너무 짧은 외국인 고용 허가 3년
달성공단 내 골판지상자 제조공장 (주)한림팩. 그 곳에서 만난 큰 눈을 가진 낯선 사내는 지게차로 싣고 온 골판지를 '수동 박스 봉합기'에 넣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능숙한 솜씨로 상자를 만들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산업연수생 마틴(Martin·29). 이 공장에서 가장 일 잘한다고 소문난 외국인 노동자다.
지난해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선정한 '모범근로자상'을 받을 정도다.
하지만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건너온 마틴은 이제 석달 후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한국에 다시 오고 싶어요"
"아~녕하세요! 저는 필리핀에서 온 마틴입니다.
"
서툰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꺼낸 마틴은 2년 전 한국에 왔다.
필리핀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하다가 부인과 두 살짜리 딸을 고국에 두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이유는 바로 '돈'. 지금 한 달에 90만 원을 받고있는 마틴은 필리핀에서보다 수입이 두 배 이상 좋다고 한다.
"타국에 와서 마음 고생은 심하지만 고향에 있는 7명의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일은 힘들지만 한국에서 빨리 돈을 벌어 고향에서 꼭 하고 싶은 것도 있구요."
마틴이 말한 '꿈'은 바로 오토바이 장사. 꿈을 위해 다른 외국인 노동자처럼 술을 먹고 카드를 치는 등 흥청망청 살지 않고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인 70만 원을 꼬박꼬박 고향에 보내고 있다.
마틴은 이 공장에서 '보배'같은 존재다.
공장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7명의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의 '맏형'을 자처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기숙사 생활이나 작업 중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 알리고, 또 회사의 요구는 동료들과 의논하기 때문이다.
또 새벽같이 일어나 작업 전에 항상 장비를 점검하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소문났다.
"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 기뻐요. 하지만 가끔씩 '야 이리와!' 명령을 하거나 못 알아듣는다고 욕을 하는 한국 사람들 나빠요~. 한국사람들이 우리 외국인을 인간으로 봤으면 해요."
4월이면 연수기간이 끝나 한국으로 떠나야 하는 마틴은 "주위 친구들 나쁜 사장님 만나 다치고 힘들어 하는 것 많이 봤어요. 저는 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돈 많이 벌었고 다시 한국에 오고 싶어요"라며 남은 한국생활을 아쉬워했다.
◇쓸 만하면 떠난다
1991년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대구·경북에 온 외국인 노동자 역사가 올해로 꼭 15년째를 맞았다.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구·경북 외국인 노동자는 2만4천710명. 여기에다 불법체류자도 7천∼8천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사람들이 떠난 3D업종에서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산업 전반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아직 미비하고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그동안 수없이 바뀐 외국인 노동자 정책처럼 지난해부터 시행된 외국인고용허가제 역시 기업인과 외국인 노동자 둘 다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 중 기업인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고통은 바로 실컷 일을 가르치고 난 뒤 쓸 만하면 떠난다는 것. 마틴의 경우처럼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그 때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림팩 생산부 김건수 차장은 "마틴이 하는 일은 숙련하는데 보통 1년정도 걸린다"라며 "지금까지 세 번의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받았는데 한창 일 잘할 때 보내게 돼 늘 아쉬웠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고국으로 가면 다시 비싼 송출료를 내고 한국으로 재입국해야 하고 그나마 전 직장 재취업이 불가능해 새로 일을 배워야 하는 고충이 있다.
결국 대부분의 산업연수생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불법체류자'를 선택한다.
그나마 산업연수생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아 임금, 노동 환경 등에서 '상류층'에 속하지만 불법체류자는 '불법신분'때문에 임금체불, 열악한 노동 환경 등 온갖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중기협중앙회 관계자는 "당장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기간 연장을 원하고 있다"라며 "현행 3년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려고 쓴 송출료가 아까워 스스로를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시키기에 딱 적당한 기간"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노동부는 고용허가제 시행과정에서 제기된 복잡한 신청절차 개선 및 10인 이하 영세사업장의 허용인력 확대 등 개선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을 고쳐 현행 1개월인 내국인 고용노력 의무기간을 1주일로 단축하고, 신문·생활정보지 등에 구인광고를 게재할 경우 의무기간을 3일로 줄였다.
또 현재 1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내국인의 50% 이내에서만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한 제한규정을 삭제하고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외국인을 5명까지 고용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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