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쥐와 바보 온달(나쁜 여자와 착한 남자)

입력 2005-02-17 15:05:34

-여자와 명태는 두들겨라.

-여자 무게는 강짜 무게.

-여자와 바가지는 나돌면 깨진다.

-여자 사흘 안 맞으면 꼬리가 난다.

김열규 교수가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이란 책에서 '욕도 성차별 한다'는 대목에 제시한 여성 비하 속담이다. 재수 없다거나 부정탄다고 천대받던 한국 여성들이 요즘 사회 각 분야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성들의 약진이 눈부신 반면 남성들은 지리멸렬 상태다. 기세 등등해진 여성들이 '소수로 전락한'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걱정할 정도다. 욕먹던 '팥쥐' 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콩쥐(착한 여자)' 대신 '팥쥐(나쁜 여자)'형 여성의 득세 때문이다.

자기 주장 강하고 똑 부러지는 '팥쥐'형 여성들은 사법·외무·행정 등 주요 국가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법조계의 여성 바람은 강풍(强風) 수준이다. 지난 15일 법관 인사에서 정식 판사로 임용된 예비 판사 110명 가운데 절반 가량인 54명이 여성이었다. 기업에서도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 자리에 여성이 부쩍 늘었고 신입사원 공채에서도 여성 합격자 수가 급증 추세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국민·기업은행의 신입행원 채용에선 전체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기악화로 취업난이 심각한데도 여성취업자 수는 증가 일로다. 지난해 20대 남성 취업자는 전년 213만5천 명에서 208만8천 명으로 무려 5만 명 가까이 줄었다. 반면 여성은 219만9천 명에서 223만3천 명으로 3만4천 명이 늘었다. 지난 2002년 처음 20대 남녀 취업자 수가 역전된 이후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급기야 여성들이 남성들을 챙기고 나섰다. 고양이 쥐 생각이 아니다. 실제 걱정하는 눈치다. 서울지역 초등교사 임용시험에서 여성의 합격비율이 90%를 돌파하자, 한양대 여학생회는 '남성 할당제 도입'을 주장했다. 여교사 수가 절대적으로 많다면 인성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양대 여학생회는 "남성이 소수자로 전락한다면 남성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여성권익을 찾자고 아우성치던 여성들의 입에서 이런 주장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양대 여학생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여성단체에도 일침을 가했다. 여성의 이익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다가 역차별까지 가는 극단의 자세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전통적' 남녀의 역할과 성격도 뒤바뀌고 있다. 20대 남성들 사이에 '착한 남자 신드롬'이 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포털 MSN이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실시한 '싸우는 기술 vs 화해하는 기술'이라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대부분은 남녀간 갈등의 원인이 남성에게 있다고 생각했으며, 화해도 남성이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남자의 경우 '나쁜 남자, 강한 남자'에서 '착한 남자, 예쁜 남자'를 추구하는 반면 여자는 '착한 여자, 예쁜 여자'에서 '나쁜 여자, 강한 여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대 남녀 모두 양성화(兩性化)를 추구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광고회사도 우리 남성과 여성들의 양성화 추구를 주목하고 있다. 제일기획은 '2004년 우리시대 남녀의 조용한 혁명'이라는 보고서에서 남성의 66.7%, 여성의 57.3%가 '양성형'으로 분류됐다고 밝혔다. 남성의 경우 여성적인 섬세함과 함께 외모를 적극적으로 가꾸는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 대도시에 살면서 패션과 외모에 여성적인 감성을 가진 남성)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여성은 포용력과 리더십을 갖추고 당당한 자의식으로 무장한 '우마드'(Womad : 여성과 유목민의 합성어. 신 모계사회의 도시유목민) 성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

젊은 층의 이 같은 변화는 자신의 성이 지닌 장점에다 이성이 지닌 강점을 융합시키는 양성(兩性) 추구로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생존할 수 있는 인간형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테'-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남녀 양성을 갖춘 신-라는 말이다.

팥쥐형 여성은 자신의 힘으로 서고자 하는 독립적인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여성의 섬세함과 남성의 추진력을 동시에 갖추려 한다. 반면 과거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정을 등한시했던 남성들은 이제 사회적 관계보다 가족을 더 중요시하며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다. 남녀관계도 남성들은 연상 및 경제력 있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며 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먼저 프로포즈할 정도가 됐다. '온달형' 남성의 증가가 사회적 추세가 된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대졸 이상 젊은 영국 여성들도 배우자감으로 말 잘 듣고 가사 일도 도맡는 순종적인 '착한 남자'들을 찾고 있다고 영국 옵서버 인터넷판이 최근 보도했다. 자신처럼 사회적 성공을 지향해 서로 경력관리 욕구가 충돌할 남성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란 것이다. 남녀의 양성화 추구는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맞아 앞으로 더욱 일반화될 것이라고 한다. '평강 공주'를 기다리는 '바보 온달'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란 얘기다.

공자도 시속을 따르라고 했다. 보리수염도 세태에 따라 '착한 남자'가 돼야겠다.

"여보! 술 조금만 먹고 일찍 들어갈게."

조영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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