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짱' 주부 이영미의 요리세상-과메기

입력 2005-02-15 11:11:41

바다향 품은 겨울 필수품

요즘 '7080'이라는 말과 함께 '추억'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국어사전에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 생각'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써 놓고는 혼자 피식 웃는다. 얼마 전 받은 독자의 메일 중에 내 글을 읽다 보면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는 글이 있었던 기억에.

학창 시절에는 소설 한 권을 읽고 나면 마치 국어 교과서 같았던 적도 많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단어,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국어사전에서 일일이 찾아 깨알 같은 글씨로 옮겨 적으면서 느꼈던 열에 들뜬 듯했던 기분. 그 덕에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버릇도 생겼다. 찾아 놓은 단어의 뜻을 보며 다시 읽는 즐거움 때문에. 책 읽기의 즐거움보다 사전 찾기의 즐거움이 더 컸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게다.

그런 나를 특이 체질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사전 찾기의 최고의 즐거움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이라고. 사전에서 단어 찾기는 찾고자 하는 단어를 입력하고 'enter' 만 누르면 되는 인터넷 검색과는 다르다. 찾고자 하는 단어를 찾아가는 여정(?)이 그리 간단치 않은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단어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다 정작 찾고자 하는 단어는 까맣게 잊은 채 다른 단어들을 찾아 옆길로 새 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97년 겨울 이후 이것을 먹지 않으면 겨울을 보냈다고 할 수 없다. 이걸 먹어야 나의 겨울은 존재한다. 무엇이기에 그리 거창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과메기'다. 과메기를 처음 먹어 보았던 그 해 겨울, 국어사전을, 'ㄱ'을 찾고, 'ㅘ'를 찾은 뒤 'ㅁ'이 들어가는 단어 중 맨 마지막인 '과밀도시'까지 샅샅이 찾아보아도 '과메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쫀득쫀득하니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그 맛에 반해, 굽지 않은 김에 초고추장 찍은 과메기 한 점 얹고 매운 고추와 마늘, 실파를 얹어 양 볼이 볼록해지도록 먹는 맛은 국어사전에 있는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 맛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도 섭섭한데 과메기라는 말 자체가 사전에 없다니. 내게는 충격이었다. '어찌하여 이리도 맛있는 과메기가 사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단 말인가?' 하면서.

과메기는 내게 추억의 맛이다. 과메기와 와인, 그리고 촛불, 느닷없이 터지던 폭죽. 남편이 나를 위해 준비했던 깜짝 이벤트와 함께 처음 먹어 본 과메기. 결혼 후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으로 이사 가던 날의 기쁨이란. 하지만 인생사가 늘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내 집을 두고 작은 집으로 전세를 얻어 갔던 그 해 겨울. 남편은 그렇게 나를 위해 마음과 정성을 보여 주었었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과메기로. 너무나 소중한 마음을 사전에도 없는 귀한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너무 심한 착각은 일종의 질병이라는데….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rhea84@hanmail.net

◇재료=과메기 1두름(20마리), 생미역, 실파, 통마늘, 청량고추, 김, 초고추장

◇만들기=①과메기는 머리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긴 후 뼈를 발라낸 뒤 4㎝ 정도 길이로 자른다. ②통마늘은 3조각 정도로 썰고, 청량 고추는 어슷썰기를 한다. ③생미역과 실파는 4㎝ 정도 길이로 자르고 김은 굽지 않은 채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④준비한 재료들은 접시에 담고 초고추장과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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