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행의 꽃 빙벽 등반

입력 2005-02-02 11:05:56

"하체를 좀 더 붙여요, 붙여".

지난 30일 오전 6시 설악산 토왕성폭포. 새하얀 고요를 머금은 설악산이 깜짝 놀랄 만큼 최기환(40) 대구등산학교 훈련부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댄다. 모두 입김이 뿌옇게 퍼질 정도로 사나운 추위와 싸워가며 한 박자 한 박자 피켈(얼음도끼)을 열심히 움직인다. 전날 야간산행에다 야영까지…. 빡빡한 일정에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초췌한 모습이지만 눈빛만은 살아있다. 이곳 빙벽등반은 대구등산학교 동계반 수강생들의 마지막 코스. 한 달에 걸친 훈련을 총 정리하는 실전이어서 일까? 수강생들의 열의는 산을 뒤덮은 눈을 금방이라도 녹일 기세다. 3단으로 이뤄진 토왕성폭포는 이맘때면 거대한 빙폭으로 바뀐다. 빙폭으로는 아시아 최고높이(360m)라는 명성때문에 매년 빙벽등반을 꿈꾸는 산악인들에게는 최고의 도전장이 되고 있다. 동계반 수강생 19명이 기대에 찬건 당연지사. 특히 막 수능시험을 끝낸 막내둥이 장새별(19'여)양은 더더욱 그러하다. 등산매니아인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다는 장양은"또래들이 접하지 않은 색다른 경험을 한다는 것만으로 무척 뿌듯하다"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빙폭의 위압적인 모습과 까마득히 보이는 꼭대기, 지레 겁을 먹을만도 하지만 그들은 쉼없이 로프에 몸을 맡긴 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얼음에 매달린 모습이 아슬아슬해 지켜보는 이들도 좀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최기환씨는"거센 바람과 언제 있을지 모르는 낙빙 때문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라며 빙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한두시간이 흐르자 거대한 빙폭이 조금씩 사람들로 채워진다. 어떤 이는 힘에 버거운 듯 제자리에 마냥 머무르고 있다. 한참 후 꼭대기에 다다른 수강생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정복되기 힘들 것만 같았던 토왕성 빙폭도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여기저기서 "와"하며 환호가 터져나온다. 산행 경력 20년인 박욱현(38)씨는"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짜릿하다"라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장병호(44) 대구등산학교 학감은"빙벽등반은 겨울 산행의 꽃"이라며"항상 위험은 있지만 그만큼 성취감은 남다르다"라며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빙벽등반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계절스포츠인 빙벽등반은 그 형태가 암벽등반과 비슷해 자주 비유된다. 하지만 몇가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암벽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홀더(holder)'가 한정돼 있지만 빙벽은 피켈로 찍는 곳이 홀더다. 즉 자신이 직접 루트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얼음이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과 고드름 사이를 피켈로 찍는 것이 요령. 이 부분들은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얼음이 버섯 형태로 볼록하게 나온 부분과 푸른 빛이 도는 부분은 부서지기 쉽기 때문에 피해 가야 한다. 또 암벽은 등반기술을 요하지만 빙벽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어 오르기가 훨씬 쉽다.

하지만 빙벽등반은 낙빙 등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사전 교육 및 전문가 동반이 필수적이다. 전문기관으로는 대한산악연맹 대구광역시연맹 부설 대구등산학교(053-257-8804)가 대표적. 이와 함께 장비도 중요하다. 얼음을 찍는 피켈과 부실한 얼음을 제거하는 아이스 해머, 발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아이젠을 비롯해 헬멧, 방한복, 빙벽화, 안전벨트 등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빙벽등반은 즐길 수 있는 곳이 50여 곳이 되지만 설악산 토왕성 빙폭이 가장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5일과 6일 이틀간 빙벽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대회기간을 제외하고 토왕성폭포로 가기 위해선 사전에 설악산 관리사무소(033-636-7700, 7702)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글 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사진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사진: 대구등산학교 동계반 수강생들이 빙벽등반을 마치고 눈을 헤치며 하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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