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太洙 칼럼-大邱 '열림 속의 지킴'

입력 2005-02-01 08:43:19

대구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열려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문학·음악·미술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어느 지역보다 앞서거나 해외(선진국)로부터 새 흐름을 빨리 받아들이면서 나름으로 새롭게 꽃 피우는가 하면,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도 ?

개화기 이후부터 대구에서 활동했던 문인·예술가들 중에는 서울로 무대를 옮겨 선구적 역할을 한 경우가 적지 않으며, 영향력 역시 컸다.

이 지역 사람들의 '개방성'과 '진취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구에서 싹이 튼 문학·예술의 '열림'이 큰 영향력을 뿌리고, 새로운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는 게 바로 그 방증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언제나 '지킴'이라는 주체성이 자리 잡고 있었던 점은 주목해야 한다.

대구에서의 '열림'은 어디까지나 주체성에 뿌리를 둔 '열림'이었다.

달리 말하면, 새로움을 향한 '개방성'이나 '진취성'이 언제나 '보수성'이나 '배타성'을 담보로 하고 있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 '보수'와 '혁신'이 공존하거나 융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혁신이 또 하나의 새로운 보수로 '자리 매김'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복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대구에서의 문학·예술 활동은 이같이 끊임없이 새로움을 지향하면서도 보수성이 두드러지는가 하면, 보수적이면서도 부단히 새로움을 지향하는, 이른바 '열림 속의 지킴'이나 '지킴 속의 열림'이라는 미덕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이 미덕은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혼선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 미덕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게 하는 '화두'가 되고, '동력'이 되는 복합적인 요인이어서 내세울 만하지 않을까.

흔히 대구를 '보수적이고 배타성이 강한 도시'라 한다.

이는 주체성이 강하다는 말이 되고, 고답적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무게 중심이 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각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 이후 대구가 '변화의 도화선'이 되거나 새로운 흐름을 앞서서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이었으며 진취적인 기상이 두드러지는 도시로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구가 거느리고 있는 도시 성격이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특성을 동시에 거느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점들을 미뤄 보더라도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대구가 거느리고 있는 도시의 정체성은 '열림'과 '지킴'이라는 상반되는 성격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복합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구의 정체성'은 '열림 속의 지킴' 또는 '지킴 속의 열림'이라고 거칠게나마 괄호를 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학과 예술은 언제나 우리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 시대나 그 속의 정신을 반영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형도'들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이 때문에 그 지역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 알맹이에 해당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외부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도시의 정체성은 누구나 수긍하는 가운데 부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서 긍정적인 면이 강조될 수 있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결속력과 자긍심을 북돋우며, 내외적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부각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열림 속의 지킴'이나 '지킴 속의 열림'은 대구의 정체성이며, 성장과 발전의 동력이 아니었던가 한다.

개방성과 진취성이라는 측면과 전통(보수성)과 주체성을 중시하는 측면이 어우러져 상호 상승작용을 하게 하는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방성이나 진취성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외부의 시각이 대체로 그렇듯이, 보수성이나 주체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열림 속의 지킴'이 더 타당한 규정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대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정체되고 침체돼 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되는 게 없는 도시' '가난한 도시'라는 자괴감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다.

지난해 대구시가 새 슬로건으로 '컬러풀 대구'를 정한 까닭마저 '이젠 반대 방향으로 달리자'는 역설로 들리는 건 '왜'일까. '문화산업 도시' '기업 하기 좋은 도시' 등 지향점도 적지 않지만, '어떻게 현실로 변용을 시킬 수 있느냐'가 문제요 과제다.

대구가 그렇게 거듭나자면 위도 아래도 달라져야 한다.

다시 지난날처럼 새롭게 열려야 하고, 그 안에서 흔들림 없이 지킬 것을 완강하게 지켜야만 한다.

아니, 이젠 일단 더욱 확실하게 열려야 한다.

'열림 속의 지킴'이 대구의 정체성이자 '미래지향적인 화두'가 돼야 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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