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활성화·창작의욕 고취
문화관광부가 올해부터 '미술은행(Art Bank)'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자 지역 미술계가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미술은행이란 공공기관이 미술품을 구입해 공공건물에 전시하거나 일반에 임대하는 것으로, 침체된 미술시장 활성화와 작가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한 제도. 시행 첫해인 올해는 25억 원의 예산으로 200~300점의 미술품을 구입할 예정이며 내년부터 향후 연간 예산을 30억 원 내외로 늘릴 예정이다.
미술은행제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다.
현재 미술시장은 1990년대 이후 불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작품에 대한 개인의 구매욕구마저 위축되고 있다.
더욱이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작가는 손꼽힐 정도. 이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의욕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이다.
미술은행 운영주체는 우선 2005년과 2006년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맡고, 2007년엔 가칭 재단법인 '한국미술진흥재단'을 설립, 독자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미술은행 운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한 '미술은행운영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작품구입은 질적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작품추천위원회' 제도를 두고 역량 있고 발전가능성 있는 작가를 발굴할 계획이다.
구입에 앞서 객관성과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작품구입심사위원회'에서 엄격한 심사절차를 거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미술은행 설립·운영 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18일 1차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화랑협회 김태수 회장은 "한국 미술시장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미술작품의 정상적인 유통체계를 만드는가가 관건"이라며 "전체 시장으로 봤을 때 작품구입비 규모는 크진 않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고무적인 일이고, 이를 두고 각 미술단체들이 지분을 나눠먹는 구태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시행에 대해 지역 미술계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서양화가 윤병락(37)씨는 "현재 젊은 작가들 중 미술만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되고 대부분 2, 3개의 직업을 갖고 미술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제도가 활성화된다면 젊은 작가들에겐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김결수(39)씨는 "기본적인 취지는 동감하지만 진행과정에서 얼마나 작가들 피부에 와닿을지는 의문스럽다"면서 취지를 잘 살려줄 것을 당부했다.
중견작가들도 이를 환영하고 있다.
이원희(50) 계명대 교수는 "미술시장이 어려운 가운데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애호가들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랑운영자들도 새로 도입되는 미술은행 제도를 적극 반기고 있다.
시공갤러리 이태 디렉터는 "무조건 환영"이라며 "외국 미술시장처럼 우리나라도 미술작품의 문화적 가치가 높이 평가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원화랑 손동환 사장은 "어쨌든 정부차원에서 미술계를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젊은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선정되도록 화랑이 1차적으로 좋은 작가를 제안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계가 오랜만에 좋은 계기를 만난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백프라자 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 "공기업은 미술구입비를 책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여사업에 집중할 경우 공공기관에 작품 구입비를 삭감하는 빌미가 돼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10여 년 전 사설 화랑들이 유행처럼 작품 대여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대부분 포기했던 전례를 살펴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작가 선정시 활발한 대여가 이루어질 만한 구상작품이나 장식성이 있는 작가가 우선시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남춘모(44)씨는 "작품이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라 젊고 가난한 작가들을 공정하게 발굴해 내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06년까지 미술은행의 운영을 맡게 될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연구실장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이 수준 있는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문화적 분위기를 창출하는 데 미술은행제도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외국 사례 살펴보니...영국을 비롯 프랑스·독일·호주·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은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934년 미술은행 제도를 처음 도입한 영국은 영국문화원에 소속된 BCC(British Council Collection)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정부지원과 수입금,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현재 6만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또 GAC(Government Art Collection), NTE(National Touring Exhibitions) &ACC(the Arts Council Collection)도 신진과 중진 작가 작품을 고루 구입하고 있으며 근·현대 미술작품 약 7천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5년마다 '브리티시 아트 쇼'를 개최해 영국 내 미술관, 도서관, 학교 등 100여 곳을 순회 전시한다.
프랑스의 경우 1977년 문화성 산하 조형예술위원회에 소속된 '국립현대미술진흥기금(FNAC)'을 만들어 신진작가 작품 위주로 구입, 소장 및 대여를 하고 있다. 외국작가를 포함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현대예술가 작품을 구입하는데, 연간 작품구입예산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47억 원이다.
작품은 연 2회 공모제와 추천제로 엄격하게 구입하며 수장고에 보관된 50% 정도는 주로 국립미술관, 해외대사관, 국·공공기관에 대여한다. 특히 해외 주재 대사관으로 보내는 경우나 국립미술관 등으로 보내는 작품의 경우 3~5년마다 작품을 새롭게 순환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프랑스 미술을 홍보하는 문화사절단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FNAC는 현재 7만2천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캐나다의 Canada Council Art Bank는 대여가능한 작품 중심으로 구입해 수익으로 신진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있으며 현재 현대미술작품 1만8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1980년 설립된 호주의 Artbank는 회화, 판화, 조각, 멀티미디어 등 9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