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酉年 '닭'을 말한다

입력 2005-01-01 08:45:05

'아침' '시작' 알리는 상서로운 존재

2005년은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다.

꿩과에 속하는 닭은 약 4천년 전 조류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에 의해 길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닭을 기르기 시작한 연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으나 경주 천마총에서 계란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닭은 한때 먹기 힘든 귀하신 몸이었다.

한국계육산업발전사에 따르면 1930년대 닭 1마리 값은 2원으로 쇠고기 2.4㎏ 가격과 맞먹었다.

당시 계란도 10개 가격이 쇠고기 600g과 같은 가치를 가진 금란이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육계가 대규모로 사육되면서 닭의 신분이 급추락,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됐다.

닭을 재료로 하는 외식 산업도 부침이 심했다.

춘천식 닭갈비 열풍을 안동찜닭이 이어 받았으나 2002년부터 성장세가 멈추면서 이제는 불닭발이 인기다.

민속학적으로 닭은 상서로운 동물이다.

예로부터 새해의 시작인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닭의 날'이라고 했다.

닭은 처음을 뜻하는 동물로 창조신화나 난생설화에도 많이 등장한다.

이육사는 시 '광야'를 통해 닭 우는 소리로 태초의 이미지를 표현했고 박혁거세는 알에서 났고 김알지가 태어날 때는 숲에서 닭이 울었다 하여 그 숲을 계림이라 부르고 있다.

새벽녘이면 어김없이 온 마을이 닭 울음소리로 시끌벅적한 시절이 있었다.

이 때쯤이면 밥 짓는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지고 할아버지의 마른 기침 소리도 들렸다.

닭이 우는 새벽은 밤과 낮의 경계시간이다.

조상들은 닭 울음소리를 통해 밤의 시간이 물러나고 낮의 시간이 시작됨을 알았다.

닭은 다섯 가지 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에 있는 볏은 문(文-벼슬), 내치기를 잘하는 발은 무(武)를 상징하고 적과 맹렬히 싸우므로 용(勇),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인다 하여 인(仁),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고 했다.

닭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역할도 했다.

정초 닭 그림을 붙이거나 닭 피를 문에 바르면 집안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조상들은 생각했다.

복날 닭을 먹는 것도 삼복의 유행병을 막는 의미가 있다.

귀신 쫓던 이러한 닭이 조류독감이라는 현대판 귀신에 밀려 힘없이 쓰러져 가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또 닭은 다산의 의미도 갖고 있다.

옛날 아이를 출산하는 산방에는 계란이 놓여져 있었다.

암탉은 평생 동안 수백 개의 알을 낳는 것처럼 며느리도 많은 아이를 출산하기를 바라던 주술행위였다.

저출산율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계란을 산모에게 선물하는 풍습을 되살리면 어떨까.

조상들은 닭의 벽사적 효능을 유지하기 위해 닭과 관련된 날에는 근신을 했다.

정초 닭의 날 부녀자들은 바느질을 삼가하고 어촌에서는 출항을 하지 않았다.

살아서 계란을, 죽어서 몸을 보시하는 닭은 길조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종종 나쁜 이미지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것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그것. '암탉이 울면 집안이 흥한다'는 시대로 변해 가는 요즘 닭에 대한 여러 가지 잘못된 인식도 재정립되어야 할 것 같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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