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영의 의료이야기-(22)의사와 대중매체

입력 2004-12-24 08:55:34

"요즘 방송 출연 한 번 못하면 의사도 아니다.

"

대구의 한 원로 의사의 근심스런 말이다.

공중파 방송의 인기 오락프로그램에는 '얼짱 의사'들이 출연, 마치 연예인 같은 대사와 몸짓으로 시청자들을 웃기기까지 한다.

물론 건강 정보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미리 짜여진 대본에 따라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건강정보가 체질과 건강 상태가 서로 다른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비타민 C가 노화방지에 좋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 그러나 이 상식이 방송을 타면 약국마다 비타민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실제 3년 전 모 방송국에서 이런 내용이 방영되자 다음날부터 약국마다 '비타민 품귀 현상'까지 빚어진 일도 있었다

지난해 대구에서 문을 연 모 병원의 원장은 방송 출연에 병원의 사활을 걸고 있는 듯했다.

개원 초기 그 원장은 수천만 원 이상의 제작비를 부담해서라도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국내 의료법이 환자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의 광고 내용과 횟수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병원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은 방송프로그램이나 신문 기사였던 것이다.

실제 그 병원과 원장은 그 후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의사가 대중매체를 통해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병원을 홍보한다고 해서 도끼눈을 할 필요는 없겠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국민들은 대중매체에 소개된 의사들을 진료를 잘 하는 사람, 심지어 '명의(名醫)'로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체들이 실력과 명성을 검토해 최고의 의사를 소개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물론 대중매체에 등장한 의사 가운데는 실력 있는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명의'가 아니라도 많은 경험과 고도의 의술이 요구되지 않는 질병의 경우 의사라면 누구나 대중매체에 건강 상식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성은 경계돼야 한다.

수익을 위해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신기술을 과장되게 홍보하고, 학계에서 인정되지 않은 '의료상품'을 간접 광고하거나 홍보하는 것은 의사 윤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더욱이 의사들이 일부 방송처럼 상업적인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기사나 건강프로그램에 등장해 국민들을 현혹해서는 안될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여성잡지를 보면 성형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클리닉 등의 광고성 기사들이 지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독자들은 처음 이런 유형의 기사들을 접했을 때, 소개된 의사나 병원에 신뢰를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광고성 기사들은 독자들의 신뢰를 잃게 됐다.

독자 여러분, 광고나 홍보 수단을 통해 이름이 알려진 의사들이 반드시 '명의'는 아니라는 점만은 기억하시길 바란다.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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