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酒幕)은 시골 길가나 도심 변두리에서 술과 밥을 팔거나 나그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집이다. 이런 집을 주막집·탄막(炭幕)·주사(酒肆)·주가(酒家)·주포(酒鋪)라고도 했다. 음식과 잠자리를 함께 제공하지만 숙박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호텔·여관·여인숙과는 다르다. 신라 시대에 김유신(金庾信)이 드나들던 '천관(天官)'이 효시라는 말도 있고, 고려 숙종 때 처음 생겼다는 기록도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보부상(褓負商)의 활동이 진전돼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19세기부터 전국에 고루 퍼져 마을 사이에는 대개 한두 집은 있어 나그네들에게 불편을 덜어 줬다. 그 이후 주막은 도시의 새 문화와 물건을 전하는 전달처 구실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장(場) 구실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주막은 새벽녘 노동자들에게 술과 모주·해장국을 파는 곳이 대부분이며, 역전과 5일장이 서는 장터 주변에 주로 있다.
○...낙동강 700리의 마지막 나루터인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三江) 주막'은 그 뿌리가 깊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합류하는 강나루에 1900년 경에 등장했다. 지금 주인 유옥연(89) 할머니가 16세가 되던 1932년부터 운영해 온 이 주막은 일제 말까지 소금배 상인과 보부상이 주요 고객이었으나 나룻배가 사라지면서 인적이 끊긴 곳이 돼 버렸다.
○...그 '삼강 주막'이 문화재로 지정될 전망이다. 시대의 변화에 떠밀려 빛이 바랜 이 주막이 제대로 복원돼 관광 명소로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도 옛 정취와 전설 같은 주모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더러 찾는다고 하나 예천군이 보존하려고 문화재 지정을 신청, 주변 땅도 매입해 놓은 모양이다. 경북도는 오늘부터 현지 조사 뒤 지정할 움직임이며, 초가 지붕 등 원형도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도 그렇지만, 김용호의 시 '주막에서'는 일제의 암울한 사회상과 서민들의 애환을 그렸다. 박태일도 '그리운 주막'에서 "산그늘 하나 따라잡지 못하는 걸음이/느릿느릿 다가서는 거기……입안 가득 머금은 어둠은 차마 눌 주랴./마른 명주 만초 동이고 비틀비틀 찾아가거니"라고 노래했다. 주막은 우리의 애환을 끌어안아 주므로 '삼강 주막' 소식이 더욱 반가우리라.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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