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충격시대...일본 혁신 성공사례 배우자

입력 2004-11-22 09:49:58

"기업 체질 강화만이 살 길"

17일 만난 대구지역 한 중소기업인은 "요즘 기업인 모임에 사람이 안 나온다"고 했다.

올해 내내 이어진 유가 인상에 최근 환율 충격까지 겹치면서 외환위기 때에 버금가는 위기감이 팽배, 기업인들이 현장 챙기기에 눈코 뜰 새 없다는 것.

무엇부터 바꿀까 고민하다 작업장 청소와 정리정돈부터 강화했다는 기업 얘기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마지노선'이라고 불렸던 달러당 100엔이 무너진 10년 전 일본의 예를 들며 '더 이상 요행은 없다'는 인식하에 체질 향상에 온힘을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역기업들의 혁신 노력

한국델파이는 일본으로 직원들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도요타자동차 계열사인 기후차체 관계자를 아예 본사공장으로 불러들여 '혁신 지도'를 받고 있다.

생산혁신 실천상황을 현장에서 직접 점검받겠다는 것. 김진희 홍보팀 차장은 "경영혁신의 상징인 일본 기후차체 관계자가 정기적으로 방문, 현장에 개선과제를 주고 실천상황을 점검한 뒤 귀국 전에 또다른 과제를 내준다"고 했다.

또 '혁신의 불씨를 지피자'는 구호를 내걸고 생산라인마다 '기본과 품질을 생명처럼' '전 제품 그린, 열정 366' 등의 현수막을 게시, 품질개선과 원가절감을 독려하며 공장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

수출 비중이 매출의 80%를 넘나드는 성서공단 내 우량 섬유업체 (주)보광. 환율 충격에다 원사가격 폭등사태를 맞자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회사 박용배 차장은 "작업현장 책임자부터 5S(정리·정돈·청소·청결·습관화)실천교육에 참여, 현장 밑바닥부터 개선해나가고 있다"며 "직원 교육 강화로 내부역량을 다져나가면서 품질향상과 비용절감을 달성해 외부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한다"고 했다.

성서공단 내 삼화포장 위성한 생산부 차장은 "최근 경제전반에 어려움이 닥치면서 현장강화, 기본충실이라는 교과서적 혁신방안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평화정공 강민봉 대리는 "최근 공정 혁신에 치중한 결과 그리스통의 안착 유도용 가이드 특허를 취득,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도 정확하게 공정목표를 실현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현장 생산성 혁신에서 성과를 얻고 있다"고 했다.

◇10년 전 일본에선

일본 엔/달러 환율은 1949년 360엔에서 1970년대 200엔대를 거쳐 1987년 120엔까지 하락했다.

1993년 110엔대까지, 이후엔 한때 100엔대가 무너지는 '환충격 사태'가 벌어졌다.

10여년 전 엔고 충격 당시 일본의 대표 기업 대다수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1993년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의 1993년 경상이익 증감률이 -25.5%, 혼다자동차는 -40.2%를 기록했다

수출비중이 매출의 65%에 이르렀던 소니는 1993년 경상이익 증감률 -21.3%였고, 1엔 엔고시 50억엔의 매출감소로 이어졌다.

정밀기계분야의 대명사 캐논은 79%의 수출비중을 갖고 있었던 터라 1993년 -50.7%의 경상이익 증감률을 나타내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이런 와중에 협력업체 등 상당수 중소기업이 도산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도요타자동차는 긴급 코스트 삭감 프로그램을 도입해 부품구입비용 절감, 교통비 절약, 잔업 안하기 운동 등을 추진, 400억엔의 비용을 절감했다.

이 회사는 가치분석을 실시, 소비자가 많이 사용하지 않는 기능부품수를 축소·폐지하는 작업 등을 통해 800억엔의 원가절감을 이뤄냈다.

도요타와 닛산이 자동차에 사용되는 표면처리 강판을 공동사용하는 등 경쟁사와의 협력을 통해 이중투자를 줄이는 방법으로 원가를 줄여냈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않은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조선소 내에 VE(Value Engineering)기법을 도입, 설계단계에서부터 제조가 쉽도록 조정해 공정수를 줄여냈다.

결국 연간 건조척수가 3척에서 4척으로 늘어났다.

엔고 충격은 일본 기업들의 해외생산 및 해외부품조달 확대로 이어졌다.

미쓰비시전기는 1993년 당시 수출용 VTR생산공장을 모두 해외로 이전한다고 발표했고, 히다찌도 이 시기 수출용 VTR생산기지 말레이시아 이전을 앞당겼다.

◇앞으로 어떻게?

진병용 대구은행 금융경제연구소장은 "내년 평균환율은 일단 1천50원 내외가 되겠지만 때때로 1천50원 훨씬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진 소장은 "환율 하락은 미국이 재정과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약세 정책을 쓰기 때문인데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단시일 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므로 최소 향후 2년은 이 같은 기조로 갈 것"이라며 "기업들은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는 각오로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는 것 외에는 위기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등 대다수 전문기관들은 일단 내년 1천50원 또는 1천60원 정도를 내다보면서도 '900원대 환율시대'를 부인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환율하락이 수출 측면에서 불리하지만 원유, 소재·부품 등의 수입물가가 싸지면서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고 이에 따라 내수회복에도 긍정적 효과를 미쳐 경제 전반에 순기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상반된 입장도 나오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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