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과 지리산 한신계곡

입력 2004-11-10 16:55:46

낙엽, 가을의 유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다

낙엽만큼 상반된 느낌을 주는 게 있을까. 낙엽을 밟으며 사랑을 키우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흩날리는 낙엽을 맞으며 실연의 아픔을 삭이는 사람도 있다. 이파리를 떨군 나뭇가지는 앙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아래 수북하게 쌓인 낙엽더미는 푸근함을 준다. 멀리 지리산 자락의 함양 땅에 자리한 상림과 한신계곡은 낙엽의 정취를 즐기기에 딱 좋다.

◇함양 상림

크고 작은 활엽수들이 가득찬 상림. 여름이면 하늘을 덮어 한 줄기 햇살도 허용치 않을 만큼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지금은 반쯤 졌다. 숲 가운데 난 큰 길은 물론 사이사이 오솔길은 온통 낙엽 천지. 단풍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빛바랜 것이 더 편안하고 정겹게 다가온다. 길이 아닌 숲속으로 들어가면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더미가 부스럭거리며 낯선 방문객을 경계할 정도다. 가끔 새소리가 호젓한 산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 더 없이 좋다.

경남 함양군 읍내 외곽에 조성된 상림은 인공활엽수림이다. 그것도 근래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늑한 1천여년 전에 만들어진 숲이다. 당시엔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하림 일대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상림만 남게 되었다. 현재 상림의 면적은 2만여평. 길이 1.4km, 폭 100~200m에 이르는 장방형의 숲이다.

이곳엔 수십년에서 수백년 수령의 10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특히 수백년이 넘도록 손때를 타지 않아 부엽토와 수분이 충분한 곳에서만 자라는 서어나무류와 참나무류들이 극상림(나무들이 경쟁을 통해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숲)을 이루고 있다. 현재 상림에서 가장 큰 나무도 수령 2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갈참나무다.

나무의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낙엽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참나무 계통은 떨어질 때부터 갈색이지만 느티나무나 감나무 이파리는 떨어진 뒤에도 완전히 마르기 전까지는 붉거나 노란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친구 4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지혜(22.대학생)씨는 "듣던대로 상림의 낙엽은 너무 운치가 있다"며 "다음에는 남자친구와 꼭 오고 싶다"고 말했다.

상림엔 숲을 가로지르는 실개울과 군데군데 세워진 함화루,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숲 한편엔 최치원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 김종직, 정여창 등 함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대학자 11명의 흉상을 세워놓은 역사인물공원이 조성돼 있다.

◇한신계곡

들판 한 가운데 조성된 상림의 평탄함이 아쉽다면 지리산 북부 한신계곡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한신계곡은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계곡미가 일품. 맑고 고운 물줄기가 이어지는 이곳은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지만 늦가을 풍치도 그만이다.

특히 백무동부터 첫나들이폭포까지 계곡과 절벽을 사이에 두고 평탄한 오솔길이 2km 정도 이어지는데, 어지러이 나뒹구는 낙엽과 아직 색깔을 잃지 않은 단풍 물결이 만추의 서정을 빚어낸다.

이 오솔길은 어린아이들도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져 있다. 감나무와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산뽕나무, 졸참나무, 생강나무, 피나무, 노각나무, 굴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많아 낙엽이 길을 완전히 덮고있다.

숲속 길을 40여분 올라가면 계곡을 만나게 되는데, 그 지점에 '첫나들이 폭포'가 있다. 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린다. 철제 다리 아래로 쏟아지 폭포수는 다리 위에서 보다는 다리 밑에서 보는 풍광이 더욱 장관이다. 한신계곡의 등반 기점인 백무동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가는 길:대구-올림픽고속도로-함양IC 빠져나와 우회전-함양읍 통과- 위천 건너기 전 우회전- 상림공원(함양IC에서 10여분 소요)

◇'낙엽 거리' 지정

대구시는 24일까지 낙엽기간으로 정하고 '낙엽 거리' 11곳을 지정해 은행, 단풍, 느티나무, 참나무 등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또 이 기간동안 시민 또는 단체가 낙엽의 거리에서 시 낭송회,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낙엽 밟기 등의 행사를 열 수 있도록 했다.

★낙엽 거리

▲수성못길(두산오거리~수성하와이) ▲두류공원(두류도서관~산마루휴게소) ▲앞산공원(은적사~대성사) ▲이천로(봉산육거리~건들바위네거리) ▲체육관 앞 3길(도청~대구체육관) ▲팔공로(공산댐~공산터널, 미대동~동화사 입구) ▲팔공산순환도로(파계사삼거리~동화사 입구, 백안삼거리~갓바위지구) ▲파계로(파군재삼거리~파계사삼거리) ▲서재로(신당네거리~신당재).

상림은 낙엽이 아름다운 곳이다. 수만 그루의 활엽수가 무성한 숲속 한가운데에 흙냄새 짙게 풍기는 오솔길과 맑은 물이 조잘대며 흐르는 실개천이 길게 뻗어 있어 운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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