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문화재 지정되는 다랑논

입력 2004-11-06 10:40:09

지난 주 예기치 않은 여행이 있었다.

만숙한 가을들과 숲들의 모습을 차창 밖으로 밀어내며 친구의 옛집에 이르렀을 때 나는 친구 녀석이 왜 그렇게 천진한 성품의 소유자인지를 금세 알게 되었다.

마을 앞에 펼쳐진 투명한 가을 바다.

작은 샛길마다 수북수북 피어있는 들꽃들. 무엇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다랑논의 풍광에 나는 입이 헤벌어졌다.

추수가 끝난 논배미들이 햇살 아래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의 옛 어머니들이 기나 긴 밤을 새워 만든 조각보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우리 옛 문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어떤 이는 석굴암이나 다보탑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팔만대장경이나 운주사의 와불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수원성이나 백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우리 문화의 가장 맑고 진솔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유품을 조각보라고 생각한다.

옛 우리의 여인네들이 지난한 삶의 한 자투리 시간에 그들의 꿈과 사랑, 기다림과 연민의 품을 한땀 한땀 이어 만든 형형색색 조각보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조각보 아래 놓인 밥그릇의 온기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것이다.

귀한 신분은 귀한 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비단이나 무명, 쓰다 남은 삼베 조각들을 붙이고 덧대 자신만의 긴 기다림의 시간들을 형상화하였으니 이 문화에는 반상의 구별이 없었다.

가끔씩 나는, 선의 꿈을 구현한 예술가라는 호칭을 듣는 칸딘스키나 모딜리아니 같은 서구 화가들이 그들이 생존했을 적 우리 옛 여인들이 만든 조각보들을 한번이라도 보았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두 무릎을 꿇고 이 지고지순한 예술작품을 만든 이가 누구입니까, 묻고 또 묻겠지만 그 주인이 이 땅의 범상한 여인네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표정이 또 어떻게 바꾸어질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다랑논들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내 여행의 목적이 문상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살아계실 적 친구의 어머님은 단 한 가지의 걱정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식구들의 밥그릇 걱정이었다.

친구는 내게 안방 곁의 광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사람 키 높이의 우람한 지사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 항아리 안에는 탈곡이 안 된 벼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노인은 늘 3년치의 알곡들을 비축했다고 한다.

아무리 험한 가뭄이나 흉년이 들더라도 3년을 넘긴 적이 없다는 것이 노인이 삶에서 경험한 진리였다.

적어도 3년분의 식량을 비축할 수 있다면 내 식구들은 빌어먹지 않고 당당하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노인은 생각했던 것이다.

밥 먹기가 해결된 시절이 왔음에도 노인의 생각은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지속되었다고 한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3년 묵힌 쌀을 내어 밥을 안치면서도 노인의 자긍심은 대단했을 것이다.

묵은 쌀 냄새 밴 밥을 퍼 담으면서도 노인의 가솔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하늘의 해와 달에 이르렀을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줄곧 친구 집 앞의 다랑논들을 지켜보았다.

한 배미 한 배미 무심하게 햇살을 받는 저 다랑논들에도 우리들의 지난했던 삶의 시간들, 눈물 많고 한숨 많던 시간들이 치렁치렁 펼쳐져 있던 셈이니 그 다랑이 논배미들의 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조각보의 모습이 왜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지를 새삼 느끼게도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경남 남해군의 가천마을의 다랑논들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45도의 산비탈에 100층 넘는 계단식 논이 배후의 산과 전면의 바다와 함께 어울린 예술품이라는 지정이유서를 읽으며 나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조금은 시끄럽고 어수선한 우리나라가 여전히 살만한 나라라는 생각을 한다.

문화재청의 생각 깊은 관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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