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라지만 고향가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경기가 어떤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새벽 인력시장. 찬바람이 불기는 아직 이르지만 추석을 며칠 앞둔 인력시장은 이미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20, 30대의 비교적 젊은 실업자도 많이 가세했지만 건설경기마저 사라져 일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2일 새벽 5시, 대구시 서구 북비산네거리의 인력시장.
60~70여명이 어둠을 밝히는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었다.
"6만5천~7만원 하던 잡부 일당과 10만원을 넘던 전문 인력 일당이 5천원에서 1만원 정도씩 떨어졌어요. 그나마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않습니다.
"
몇년째 이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는 김모(43)씨는 담배를 피워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5시20분쯤 되자 12인승 승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나타났다.
그러나 사전에 이야기된 듯 인부 4명만을 태웠고, 이곳에는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20여분이 흐른 뒤 1t 트럭 한대가 멈춰서자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
용접공으로 일당 10만원을 제시해 한 사람이 타려고 하자 다른 한 사람이 8만원만 받겠다며 나선 것. 이들의 말다툼은 주먹 싸움으로 번져 10여분간 이어졌고, 결국 인부를 기다리던 차량은 그냥 떠났다.
차량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2개월전에 이곳으로 나왔다는 홍모(38)씨는 "서로 형님 동생하며 지내다가도 일자리가 없다보니 저렇게 치고 박고 하는 싸움으로 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나오기보다는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인력 시장이 끝나는 오전 7시가 되자 허탕을 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날 일자리를 구한 사람은 30명 남짓. 그나마 30, 40대가 대부분이며, 뒷자리의 벤치에 앉아있던 50, 60대 20여명은 그래도 혹시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동한(67)씨는 "20, 30대 청년실업자들이 대거 인력시장으로 나오면서 50, 60대들은 설 자리가 없다"며 "이달들어서는 그나마 벌초 일을 며칠했는데 정작 부모님 산소는 가보지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던 커피상 아주머니는 "예전에는 하루에 15만원까지 팔아봤지만 요즘은 5만원 벌이도 힘겹다"며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다들 주머니에 돈이 없어 이 장사도 이제는 접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북구 칠성시장 인력시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
20~30여명이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고 있었지만 10여명만 일자리를 구했다.
회사 부도로 실직한 뒤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김모(52)씨는 "5년째 고향에 가보지 못했고, 가족들마저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이번 추석도 고향인 포항에 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일년 중 가장 풍성하다는 추석. 하지만 없는 이들에게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또다른 아픔이었다.
이호준.문현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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