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와 미당 詩문학관

입력 2004-09-22 09:08:21

미당 서정주는 생전에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라고 시작되는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남겼다.

그만큼 미당은 고창 선운사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은 창작의 샘물이 되었던 것 같다.

가을 산사로 더할 나위 없는 선운사, 그 곳엔 이미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서정성이 물씬 나는 선운사

선운사만큼 서정성이 물씬 나는 사찰은 드물다.

봄에는 동백꽃이, 가을엔 꽃무릇과 단풍이 절 주위를 불긋불긋 물들인다.

그런 덕택에 선운사는 어느새 고창을 대표하는 여행 일번지가 되었다.

선운사는 고창군 도솔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10여분만 발품을 팔면 다다르게 된다.

10여분의 산책은 여느 산책보다 사뭇 다르다.

곳곳에 무리를 지어 빨갛게 꽃망울을 터트린 꽃무릇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한껏 잡아끌기 때문이다.

좔좔좔 흐르는 이름모를 계곡을 가로질러 선운사에 들어서면 사찰 뒤편으로 5만여 평에 이르는 숲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숲이 바로 선운사를 동백꽃 여행지의 대명사로 만든 동백숲. 지금은 붉디 붉은 동백꽃들의 자리를 새파란 잎사귀들이 메우고 있다.

선운사는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처음 찾은 이들이 조금은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위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만큼은 어느 사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선운사는 수려한 풍광 속에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사찰.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한 선운사는 당시에만 해도 3천여 승려가 거처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 통일, 고려의 건국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오래도록 방치되었다 폐사까지 되는 수난을 당했다.

그러다 고려 충숙왕 5년(1318년) 효정(孝情)선사가 중창하면서 호남 제일의 거찰로 불렸고 조선 태종(1407년) 때 숭유억불 정책으로 많은 사찰이 철폐되는 와중에도 계속 존속하는 행운을 누렸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광해군 5년(1613년) 원준(元俊)대사에 의해 중창된 것이 오늘날 선운사의 기본 모습들이라 한다.

◆미당 시문학관과 서정주 생가

선운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우리나라 현대시의 거목이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과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미당의 고향 마을에 있는 폐교터에 건립된 미당 시문학관은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을 예찬하는 행위 등으로 미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썩 좋지 않았기에 지어질 때까지 반대여론이 적지 않았던 곳. 하지만 기념관 내에는 '귀촉도''국화 옆에서''무등을 보며' 등 주옥같은 미당의 시들이 전시되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왕 선운사를 찾았다면 이 곳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부지 9천400여㎡에 지어진 문학관은 크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미가 돋보인다.

건물 앞에는 파릇파릇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고 전시동 건물은 옛 학교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가운데 콘크리트 건물동이 우뚝 솟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미당의 시들과 그의 유품, 생전의 모습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시를 비롯한 친일적인 시와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시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시들도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친일 변명인 '종천친일파(從天親日派)'에 대한 설명은 전시해 놓은 반면 그런 행위들을 꼬집고 비판한 내용들은 없다는 게 무척 아쉽다.

주 관람 공간은 4층반짜리 콘크리트 건물. 건물 꼭대기에는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1층부터 4층까지 계단 벽과 비좁은 공간을 이용해 미당의 작품들과 사진들이 액자와 진열장에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옥상에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화려한 풍광이 눈 앞에 펼쳐져 입이 딱 벌어진다.

앞쪽으로 변산반도의 울퉁불퉁한 산자락과 함께 곰소만 갯벌을 메워 만든 드넓은 평야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뒤로는 바다에 면한 산으로는 높이가 만만치 않은 소요산이 병풍처럼 감싸안고 있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이와 함께 최근 복원된 미당의 생가인 초가집들도 또렷이 내려다 보인다.

글·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가는길:88고속도로→고서분기점→호남고속도로→백양사I.C→고창 방향 15번 국도→서해안고속도로→선운산I.C→734번 지방도→미당 시문학관→선운사(문의:063-560-2230).사진: 미당 시 문학관의 전경과 이곳에 소장된 미당의 초상화(왼쪽 작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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