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은 평생의 오할, 그 호사스러움이 지난 여름에 있었다. 남도의 음식과 문화(광주 비엔날레 행사-남도음식 기행전)를 화폭에 담으며 전라도를 다녔다. "참 징허게 생긴 게 맛은 허벌나게 좋아 불지." 동행한 화가는 막대기로 갯벌을 가리키며 '짱뚱어'에 대한 설명을 한다. 선암사, 큰스님의 산중다담, 졸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해우소의 깊이에 현기증이 난 걸까? 아마 단촐하고 무색한 '절밥'에 취했으리라. 차의 시작부터 해박한 지혜를 풀어 놓았을 터였지만 눈이 시리도록 빛나는 스님의 두상과 작은 소리의 기억뿐이다.
낙안읍성의 '벌교 꼬막', 입도 대지 않고 그저 그런 조개이려니 하고 있다가 "긍께 여그 꼬막의 주름이 이렇게 깊어야 벌교 꼬막이지라우"하는 주모의 재촉에 한입 물고는 '아!' 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무대 벌교. 벌교의 '우렁탕' 옛날 섬돌위 장독에서 퍼온 된장으로 우렁색시가 만들었을 우렁탕에는 우렁색시는 각색되어 없고 꼬리 잘린 우렁이만 떠 있다.
탁주사발을 들이킨 광주화가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다음 "쪼까 호작질 해 보쇼. 잉" 합죽선을 들고 화가들의 낙서와 낙관을 꼬드기고 다닌다. 그것으로 전시작품을 끝낼 태세다.
이번 여행은 대통밥, 대통주로 시작된 담양의 음식부터 현란한 비주얼도 그렇지만 쏟아지는 비까지 유혹해 혀끝에서 남도의 맛을 음미하기 힘들게 했다. 어쩌면 지금껏 '먹는다'는 건 한 끼의 명상이 누락된 타성과 같았다. 그 타성이 불혹의 나이까지 관성을 붙여 왔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맛의 무지렁이가 숙성된 깊이를 느낀다니… 남도를 떠돌던 며칠간, 기억할 수없는 많은 밥도둑들로 호사스러웠다. 이제 작업실에서 여름을 축낸 묘한 맛의 기억을 복구하는 일만 남았다.
권기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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