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고향이 그립고 향수가 더 짙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고향을 멀리 떠난 이들이나, 고향을 아예 잃어버린 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사람들'에게 이젠 고향만큼 절실한 단어는 없다.
머지않아 동네 전체가 저수지에 잠기고, 주민들이 여기 저기로 흩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농업기반공사 경산지사는 지난 98년부터 성곡리 일대 25만평에 농업용수용 저수지를 착공, 오는 2009년 완공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성곡지 수몰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동춘)'를 꾸리고 고향 지키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성곡리와 인근 주민 10여명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부터다.
이들은 고향의 터전과 풍경을 카메라와 비디오, 화폭에 담아 그 향수를 간직하자는 데 마음을 모았다.
다행히 성곡리 인근에 둥지를 튼 작가들이 있어, 수몰민대책위와 행동을 같이했다.
박성기(41) 수몰민대책위 간사는 비디오 장비와 사진기를 구입해 고향의 풍경을 사진과 비디오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또 폐교된 성곡초교의 칠판, 의자, 종 등 각종 비품도 하나 둘 모았다.
서양화가이자 조각가인 정하수(49·수월리)씨는 박영수(76)·반필수(72) 부부 등 성곡리 노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조만간 동네 인근에 세울 장승 조각도 만들 계획이다.
서양화가 조경현(37.현리)씨도 성곡리 주민을 대상으로 한 초상화 작업에 참여키로 했다.
서양화가 김규동(40·성곡3리)씨는 동네 풍경을 화폭에 담는 작업에 돌입했고, 천연염색을 하는 안승득(65·성곡2리), 조각가 박종태(38·성곡3리), 설치미술가 최상흠(41·성곡3리), 서양화가 이상율(47·성곡2리)씨 부부, 서예가 류재학(47·수월리)씨 등도 '성곡리 지킴이'로 나섰다.
인터넷 사진동우회 '찰칵닷컴' 회원 10여명도 이들의 요청에 따라 최근 5개월 동안 성곡리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다.
박성기 수몰민대책위 간사는 "성곡리의 역사와 문화, 생태 등이 모두 물에 잠기는 게 안타까워 사진과 그림, 비디오에 담아내자는 데 주민과 작가들이 뜻을 모았다"고 했다.
'성곡리 지킴이'들은 매월 한차례씩 모여 고향의 모습을 어떻게 잘 간직하고, 재현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은 그동안 작업한 초상화와 동네풍경 그림, 조각, 사진 등을 모아 내년 봄쯤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곧 잃어버릴 고향의 모습을 화폭과 사진으로나마 영원히 남겨두기 위해서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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