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끔찍한 '기부'

입력 2004-09-04 11:58:00

"...심봉사가 발광한다. 섰다 앉았다, 목 내어 불러봐. '여보소 뺑덕이네, 어서 오소, 어서 오소'" 판소리 '심청가'에 나오는 뺑덕어멈의 심봉사에 대한 기부(棄夫) 행태는 가관이다. 심봉사가 외출하는 날이면 이웃집 머슴을 불러 음행을 일삼고, 급기야 남편을 버리고 새 서방을 좇아 한양으로 달아난다.

지아비에 대한 정절(貞節)이 생명처럼 여겨졌던 조선조 서민사회 풍속의 이면(裏面)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여성들에겐 '속박의 시대'였던 유교사회의 기부 행태가 이렇다면 요즘은 과연 어떤가.

▲가정 폭력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 형태도 갖가지지만 그중 남편의 아내 학대가 가장 두드러진다.

하지만 경제난이 서민 가계를 심각하게 압박하면서는 가정 내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남편 학대 행태도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情夫)와 짜고 남편을 살해하는 등 세월이 흐를수록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 경악케 한다.

▲중풍에 걸린 남편을 상습폭행 등 학대하다가 딸의 도움으로 산골 폐가에 버린 혐의로 부인과 딸이 경찰에 구속.입건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안겨준다.

경찰에 따르면, 44세의 부인이 재작년 1월 남편(53)이 중풍에 걸려 쓰러지자 밥을 굶기고 때리는 등 학대를 일삼다가 지난달 15일 자고 있을 때 딸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 산골에 버렸다고 한다.

▲더구나 이 비정한 모녀는 남편 고향 동네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달 21일 집으로 돌아오자 "병 걸렸으면 죽어야 한다"며 폭행한 뒤 이튿날 같은 장소에 다시 버렸다니 할말을 잃을 수밖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의 '딸의 변명'은 더욱 가관이다.

"아버지를 내다 버린 것이 아니라 공기 좋은 산골에서 운동을 하며 요양하라고 보낸 것"이라고 했다니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기가 찰 따름이다.

▲따뜻한 가정은 행복의 바탕이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정의 평화가 세계 평화의 기초가 된다고도 믿고 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적인 단계까지 추락하는 가정이 많아진다면 암담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삶의 가치가 아무리 부와 권력에 쏠리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별 볼 일' 없어진 남편과 아버지를 '때 이른 고려장'까지 하는 세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태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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