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를 읽으면 트렌드가 보인다-(8)세상을 바꾸는 주부의 힘

입력 2004-08-31 09:48:04

20세기 초반까지 참정권 문제로 싸워야 했던 대다수 여성들. 이제는 참정권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들을 내몬다고 할 정도로 주부들의 사회참여는 일반화됐다.

전문직은 더할 나위 없고 전업주부들도 이제는 집안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도 애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서고 싶고, 하고 싶지만 아직 사회나 육아와 가사 등 가정의 여건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한자리에 모인 주부 4명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일에 대한 애정과 도전, 애로점 등을 들어봤다.

토크&토크

■참석자

서은주(41)씨=가정폭력상담소 상담원. 남편(은행원)과 2남.

최애숙(40)씨=아트플로리스트. 남편(사업)과 1남1녀.

우은경(39)씨=건축사. 남편(건축사)과 1남1녀.

최미향(38)씨=전업주부. 남편(사업)과 2남1녀.

-사회참여를 선뜻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서은주=10년 동안 전업주부 생활만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애들만 둘이라서 청소년기 시절 엄마의 역할을 고민하게 됐지요. 애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도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가톨릭대 청소년 상담과정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우은경=저는 어릴 때부터 결혼을 하더라도 일을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엄마들이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며 결혼 후에도 애들에게만 매달린다면 후회가 클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최애숙=인생의 일반적인 각본대로 살고 있다고 봅니다.

애들 청소년기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틈틈이 꽃꽂이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주부로 살면서 내 자신의 명함을 만들어 주위에 내놓을 때까지 고통도 많았습니다.

▲최미향=시집이 좀 보수적입니다.

주위 친구들도 시집을 다 잘가 전업주부로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아직 직업을 갖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요. 그러나 가만히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정도 잘 돌보면서 돌파구를 찾아볼 생각이에요.

-사회참여 후 자신에게 생긴 변화가 있다면.

▲서=매사에 고마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비행청소년을 보면서 우리 애들이 바르게 잘 커주는 것이 고맙고 가정폭력 상담일을 하면서는 남편에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최애=처음 집에서 꽃꽂이를 시작했을 때 '걷어라', '치워라'고 하던 남편이 '집 참 좋다'고 할 때는 여간 기쁜 게 아닙니다.

그럴 때는 힘든 기분이 눈 녹듯이 녹지요. 또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제자신을 보면서 한편 흐뭇해지기도 하고요.

▲우=첫애는 시어머님이, 둘째는 애보는 아줌마가 키웠는데 첫애가 어릴때 엄마 때문에 '나는 결혼하면 직업을 안갖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애들도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외교관이 되겠다는 큰애가 '나도 결혼하면 애가 생길텐데 그때는 엄마가 키워줘야 돼'라고 할 때는 한바탕 웃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여성의 사회활동에는 여러가지 애로가 많을 텐데.

▲최미=독하게 마음을 먹으면 바깥활동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시댁은 여자가 바깥에 나가면 목소리가 커진다고 생각하는 무척 보수적인 집안입니다.

남편도 단순히 돈을 버는 차원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반대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내 일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제 경우는 일과 살림 둘다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계 일도 계속 변화를 줘야 하는데 일과 살림을 같이 하려니 갈수록 정체되는 느낌이 드는거죠. 일에 대한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 이번에 석사과정에 등록했습니다.

▲서=상담일을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친구들이 저를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만나면 후원금 내라고 재촉을 하니까요.

-사회가 여성들을 내몬다는 느낌은 없습니까. 사회와 여성의 사회활동에 엇박자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우=저같은 경우 대구시와 구청의 위원회에 소속된 게 10여 군데가 넘습니다.

위원회의 30%는 무조건 여성으로 채워야 하니 전문직 여성이 어디 그리 흔합니까. 그런데 결혼 후 집에서 쉬다가 다시 일을 하려는 후배 중에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재교육시키고 취업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최애=어쨌든 주부가 두배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입니다.

▲최미=맏며느리도, 애들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의 역할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직장생활이나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전업주부의 역할도 크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사회·정리=이상곤기자 leesk@imaeil.com사진: 여성의 사회활동에는 많은 장애물과 애로사항이 뒤따른다고 털어놓은 주부들. 사진 왼쪽부터 최미향, 최애숙, 우은경, 서은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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