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조그만 면소재지 마을이었다.
여름철이 되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 가설극장이었다.
마을 공터나 강변 자갈밭에 말목을 박고 흰 광목포장을 둘러 임시로 가설한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낡은 필름 때문에 상영 내내 화면에 비가 내리는 그 극장은 천으로 사방만 둘러쌌기 때문에 머리위로 밤하늘의 별이 총총 보였다.
무더운 오후 서너 시 경 낡은 트럭이 동네로 들어오고 곧 이런저런 물품들이 하역되고 몇 명의 잡부가 뚝딱뚝딱 말뚝을 박아 극장을 완성한 후 이들은 곧바로 동네 홍보에 들어갔다.
요즘 샌드위치맨처럼 몸의 앞뒤로 영화프로(포스터)를 붙인 판자를 둘러매고 핸드마이크로 그날 밤 상영될 영화의 줄거리와 주연배우의 이름을 외치며 동네 골목을 돌아 다녔다.
그 선전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 것이 영화와 첫 만남이었다.
그때 대부분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있었는데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가 무슨 뜻인지는 고등학생이 되어 영화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가질 때까지 몰랐다.
밤이 되면 임시 가설등 아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던 이미자의 애절하고 슬픈 노래는 여름 논매기와 콩밭매기에 지친 어머니와 누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고등학교를 대구로 유학 나와 처음 비산동 오스카극장 옆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별들의 고향'을 비롯해 많은 영화를 봤다.
물론 이때 본 대부분의 영화는 고등학생 신분을 속이고 들어가 관람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기념으로 드디어 당당하게 만경관극장에 입장해 '닥터 지바고'를 봤다.
눈 덮인 광활한 대지와 남자 주인공의 우수에 젖은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영화 상영 중에 국방색 꼬부랑 랜턴을 통로 낮게 비추면서 목판에 오징어나 아이스크림을 팔고 다니던 이들은 다 어딜 갔을까? 가끔 시골에서 근사하게 차려입고 올라오신 어머니가 도시에 나온 김에 영화 한 프로 보고 간다고 극장에 갔다가 누군가 의자에 붙여놓고 간 껌 때문에 그 값비싼 옷을 망가뜨려 울상 짓던 일은 이젠 아련하다.
단관이 없어졌다.
명화를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단관에서는 어떤 품격을 갖춘 문화가 느껴졌다면, 세련되고 화려하게 변한 복합관 출입은 어쩐지 문화개념보다는 오락이 앞서는 듯하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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