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마늘이다.
그만큼 의성에서 마늘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때문에 의성과 마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에 놓이면서 마늘과 관련한 구구절절한 사연도 적잖다.
지난 2002년 8월 한'중 마늘협상의 이면합의가 불거지면서 의성역 앞 도로에서는 농민 수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규탄대회가 열렸고, 이 과정에서 정창화 국회의원이 분노한 농민이 던진 방송용 카메라 지지대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이 일어나 정치권을 비롯해 전국을 떠들석하게 했다.
또 앞선 2001년 5월에는 의성지역 농민단체들이 중국산 마늘 추가 수입에 대한 정부의 항의 표시로 봉양면 문흥리의 마늘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어 전국 농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의성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자리잡은 마늘. 올해 마늘의 작황과 가격은 어떤지 다수 국민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마늘 수매현장을 찾아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26일 오전 8시 의성군 사곡면 신감리 의성동부농협 마늘수매장. 35℃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도 수매장에 모습을 보인 농민들의 안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수매장 한 쪽에서는 막걸리 파티까지 열려 이제까지 못보던 분위기가 연출됐다.
수년째 수매장을 취재해 왔지만 이날처럼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일찍이 없었던 터라 육감적으로 올해 마늘농사가 평년작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예감은 빚나가지 않았다.
의성동부농협 권기창 조합장과 농민들은 올해 마늘 작황은 수년이래 최대의 풍작이며, 1kg당 수매가도 당초 3천원인 계약가격에 비해 무려 63.4%나 오른 4천900원에 결정됐다는 것.
사무실에서 권 조합장과 각 농협에서 파견나온 검수원들로부터 올해 마늘 수매방법은 마늘 톨의 둘레가 4cm이상이며, 줄기를 자른 마늘만 수매한다는 자체 수매방법과 요령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곧바로 수매에 들어갔다.
수매는 농민들이 가져온 마늘 중 한 포대(10kg 기준)를 샘플로 채취, 직사각형의 수매대에 쏟아부어 마늘의 굵기와 품질을 보고 합격을 판정하는데 첫날인 탓에 수매량이 많지 않았다.
대신 수매장의 분위기를 보려고 나온 농민들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수매 방법과 규정을 파악하려는 듯 수매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김영웅(66.의성군 사곡면 매곡2리)씨는 "작년엔 잦은 비와 병해로 씨마늘 값도 못건졌지만 올해는 풍작에다 가격도 크게 올라 모처럼 목돈을 손에 쥘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한국농업경영인 의성군연합회 황영록(48.의성군 사곡면 신리) 사곡면 지회장은 "수년 전 마늘파동을 겪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흉작으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현재로서는 마늘농사 외에는 달리 지을 농사가 없다"며 "그래도 아직까지는 마늘농사가 의성을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거들었다.
농민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검수원과 농민들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
원인은 마늘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은 즉 4cm 이하의 마늘이 샘플 채취 과정에서 드러나 검수원이 불합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 일부 농민들은 지난해 수매 때는 일부 규격이 미달된 마늘도 받아줬는데 올해는 규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으나 결국 발길을 돌려 농협 직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수매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신정석(의성동부농협 상무) 농협연합판매단장은 "종전과는 달리 올해부터 수매규정이 엄격해진 것은 의성동부농협을 비롯한 의성, 단촌, 봉양, 안평, 신평, 금성농협 등 7개 농협이 연합판매단을 구성한 데다 검수원들이 교차로 수매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 단장은 또 "예년 같으면 무사히 수매에 통과될 마늘도 올해부터는 불합격 판정을 받아 되돌아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며 "수매용 마늘은 훨씬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티셔츠와 속옷은 벌써 땀으로 흥건히 젖었고, 얼굴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리는 등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도저히 서 있기도 어려워 잠시 땀을 말릴 요량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권기창 조합장에게 면박만 받고 쫓겨났다.
체험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창고 쪽으로 끌고 갔다.
사무실 앞 창고는 수도권과 대구 등지의 농협 물류센터와 하나로마트로 보낼 마늘을 선별 포장하는 곳.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등 뒤에는 여전히 땀이 흐르고 있었고, 마늘을 드는 순간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먼지로 눈을 뜨기가 어려웠지만 체험은 계속됐다.
가위로 마늘 줄기를 자른 뒤 1접(100톨)씩 포대에 담으며, 옆자리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먼지가 입에 들어간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참이 지났을까 권 조합장은 점심을 먹고 하자며 재촉했지만 이미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고 파김치가 된지 오래여서 식욕이 날 리가 없었다.
사무실 에어컨에 머리를 맞댄 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고, 농협 직원들이 식사제의를 했지만 이미 체력은 바닥난 상태여서 카메라가 담긴 취재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비록 오랜시간은 아니었지만 반나절 동안의 마늘 수매현장 체험은 농업현장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수년 전 마늘파동이 일어났을 때 농민들이 왜 아스팔트로 뛰쳐나왔으며, 멀쩡한 마늘밭을 왜 갈아엎었는지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사진: 수도권을 비롯해 대도시 농협물류센터와 하나로마트에 보낼 마늘을 손질해 포장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희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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