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민족정기...또다른 폭력 되지 않기를

입력 2004-07-15 08:56:32

1976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사망으로 문화대혁명이 남긴 부정적 유산의 청산작업에 들어간 중국은 1981년 중국공산당 제11기 6중전회에서 통과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적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마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마오 동지가 문화대혁명에서 심각한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중국혁명에 대한 그의 공적은 과실보다도 훨씬 커 공적이 첫번째이고 과오는 그 다음이다"

중국이 이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마오를 부정하는 것은 중국의 공산혁명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마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길로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정체성 유지와 실용주의 추구라는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구현할 수 있었다.

중국공산당의 '결의'는 '역사와 인물의 올바른 평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물음에도 시사하는 것이 많다.

'결의'는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특정한 시점이나 특정행위에만 국한해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당위론의 좋은 실천사례이다.

지금 여당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을 개정, 조사대상자와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한나라당은 특히 친일행위자의 범위를 '중좌 이상의 군인을 소위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것을 놓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친일행위자로 부각시켜 박근혜(朴槿惠) 대표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당이 이같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쨌든 개정안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은 친일행위자란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조사대상에 포함될 많은 인사들의 친일행적이 그의 전면모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1946년 9월 필리핀에서 A급전범으로 교수형당한 일본군 남방군 총사령부 병참총감 홍사익(洪思翊) 중장이다.

그는 일본군 장성으로 있으면서도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월급을 쪼개 비밀리에 항일운동가의 가족들을 보살폈다고 한다.

조선인이면서 일본군 장성이라는 현실에 엄청난 인간적 고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홍 중장 말고도 이같은 면모를 가진 친일행위자는 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란 특정시점과 친일행위라는 특정행위에 역사적 인물을 가둬서는 안된다는 반론도 그래서 나온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을 수없이 보아왔다.

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도 '민족정기 구현'이란 이름의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면 독립유공자들을 욕보이는 것일까?

정경훈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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