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 절대왕정이라는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타파하고 자유평등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은 이미 몰락중이었다.
루이 14세 후기부터 대외정책 실패와 궁정생활 낭비로 인해 재정은 파탄지경이었다.
국민의 2%에 불과했던 성직자와 귀족 계급이 대다수의 농민과 시민들을 지배하는 불합리한 신분제도도 문제로 인식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싹튼 '계몽사상'도 절대주의를 비판했다.
게다가 미국의 독립 소식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시민사회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외부적 문제해결을 위해 루이 16세는 최후 수단으로 1614년부터 소집되지 않았던 '삼부회'를 소집했다.
여기에서 계몽주의자들은 독자적으로 '국민회의'를 구성했고, 뒤이어 귀족과 성직자들도 가입하면서 '헌법국민회의'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보수귀족들의 선동에 넘어가 파리로 군대를 불러들여 의회를 위협했다.
파리 시민들은 이에 분개했고 데물렝이라는 젊은 기자의 선동에 따라 폭동을 일으키고 가장 먼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이후 10년간 유럽은 격동에 휘말렸다.
시대를 거스른 왕권에 시민들은 혁명으로 보답했다.
△1907년 이준(李儁) 열사, 헤이그서 순국 △1936년 일제, 조선토지조사령 공포 △1981년 한국 여자농구팀, 존스컵 국제여자농구대회 우승 △1993년 제2차 북-미 고위급 회담.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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