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국왕이 직접 살피기 위해 태종이 신문고(처음엔 등문고로 했음)를 설치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신문고가 전시행정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일부 관료들은 신문고가 너무 자주 울려 국왕의 업무에 지장이 많다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어째서 신문고가 양쪽 모두의 비판을 받는 처지가 됐는가.
신문고 이용절차는 너무 복잡하다.
신문고를 치려면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양 사람들은 담당 관원에게 먼저 호소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사헌부에 호소해야 한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신문고를 칠 수 있다.
지방 사람은 고을의 수령에게 먼저 호소하고, 그 다음 관찰사에게,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사헌부에 호소해야 한다.
사헌부의 처리에도 만족할 수 없을 경우 신문고를 울릴 수 있다.
특히 각 단계별로 그 사안을 처리했다는 관원의 확인서를 받아야 다음 단계에 호소할 수 있다.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신문고를 울릴 경우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엄한 처벌을 받는다.
절차는 중요하다.
절차를 두지 않을 경우, 국왕 혹은 고위층의 눈과 귀에만 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대신 고위층의 힘에 의존하는 풍조는 나라를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고의 절차는 너무 길고 복잡하다.
백성들은 아예 억울함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게다가 관리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가 신문고를 통해 왕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틀어막고 있다.
유형, 무형의 압력과 회유를 통해 신문고를 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세종 때에는 한 여인이 신문고 대신 광화문의 종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신문고는 또 지방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복잡한 절차와 먼 거리를 감당할 수 없어 억울한 사연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다.
더구나 신문고가 궁궐 안에 설치 돼 있고, 무장한 병사가 지키고 있어 일반인의 접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신문고를 이용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양에 거주하는 양반과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관료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절차상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신문고를 울린다.
국왕이 정상적인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라며 신문고제도를 폐지하자는 일부의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신문고를 울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방증이다.
수령과 양반, 지주들의 수탈…. 힘없는 백성의 억울함은 많고도 많다.
신문고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다.
신문고가 '있으나 마나 하다'거나 국왕의 업무를 방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문고의 역할이 개인의 억울함을 해결하는 수준에 머물 뿐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엇비슷한 개인적 억울함 호소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신문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신문고의 기능을 바로 잡아야 한다.
신문고는 개인의 억울함을 사회적 억울함으로 보편화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개인의 억울함을 푸는 것과 동시에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는 계기로 이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고를 울린 장본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피해를 입은 백성을 구제하고, 이 같은 피해를 야기한 제도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신문고가 잘못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백성들의 호소는 그칠 날이 없고, 국왕은 그 하소연을 듣느라 날밤을 새워도 부족할 것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