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데스크-용천소학교 돌이에게

입력 2004-04-30 11:46:27

얼마나 놀랐겠니. 네가 태어난 이후 가장 충격받은 일이 이번 사고였으리라 생각된다.

화상 입은 얼굴은 너무나 쓰라리겠지.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할텐데. 또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니 어린 가슴에 그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구나.

보도에 의하면 부상자 중 절반이 어린이들이고, 그 중 300여명은 중환자라고 하더구나. 화상으로 얼굴이 시커멓게 탄 채 누워있는 아이들을 촬영한 뉴스영상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폭발 충격으로 실명했거나 실명위기에 처한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그저께는 너의 친구 중 한 명이 나흘만에 돌 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구출돼 나오면서 첫마디가 '배가 고파요'라고 말했단다.

세계 각지에서 구호물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다.

이곳 남쪽에서도 적십자사를 중심으로 구호물자를 보냈다.

그런데 화물선 편으로 남포항을 거쳐 다시 육로로 너희들이 있는 용천까지 가야한단다.

사고가 발생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남쪽 동포들이 보내는 구호물품이 도착하겠구나. 또 민간단체에서 구호품을 보내려면 먼저 남북 양측 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고 중국 땅 단둥까지 가서 다시 압록강 철교를 건너야 한단다.

화를 당한 동포들의 상황에서는 한시가 급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또 분단 조국의 현실을 느낀다.

그래도 북한 용천 동포들을 돕자는 움직임은 들불처럼 번지며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고 있단다.

대다수가 더 빨리 더 많이 북한동포를 돕자는 글들이지만 개중에는 비판적인 글도 있다.

예를 들어 '남한에는 지금 카드 대폭발로 신용불량자가 거리를 방황하며 옥상에서 몸을 날리거나 가족동반 자살이 속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 또는 피해자 구호보다 체제지키기에 급급한 북한의 정치권력자들을 질타하는 소리들도 많이 있단다.

너는 이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를 게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예로부터 4월에는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이 많아서 춘사(椿事)라고 했다는데 타이타닉호 침몰 참사도 4월에 발생했고 9년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참사도 이달에 있었다.

지난 한달 남쪽에는 총선 결과 정치적으로 큰 지각변동이 있었단다.

북쪽에서도 이번 용천 폭발사고를 계기로 굳게 닫힌 빗장을 여는 큰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세계가 지켜보고 있단다.

일본 아사히신문 등 해외 언론들은 북한의 진정한 개방을 촉구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단다.

북한은 이제야말로 그간 여러 제약으로 이루지 못했던 개방과 경제적 도약을 기대해 볼 만한 시점이다.

피해지역에 대한 조사를 외국과 협력하여 수행하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대해 부분적이라도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다.

이번 재난을 수습하는 과정 속에서 국제교류를 넓히는 길을 찾아야 한단다.

이 부분이 너에게 해주고 싶은 중요한 말이다.

시인 T.S엘리어트가 아무리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노래해도 내일이면 찬란한 5월이란다.

어린이날에는 전국 도로가 막히고 백화점들도 '반갑다, 5월아!'라며 어린이 선물특수를 기대하고 있단다.

같은 한반도 땅이라도 태어나는 장소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아니, 병상에 있는 너에게 내가 부질없는 말을 하고 있구나.

뉴스 영상과 함께 들었던 너희들이 울부짖는 고통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는 데도 말이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는 너의 친구가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이곳 대구에 있는 대학교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기관도 있다.

가까운 장래에 북한의 개방과 남북교류가 활발해진다고 가정한다면 이곳에서 다양한 재활교육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너 '생명력'이라는 말 아나? 시골길 깨어진 보도블록 사이로 줄기를 키워 올려 샛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의 그 끈질김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데…. 네가 어른이 됐을 때는 아마 통일된 조국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용기 잃지 말고 힘내거라…. 알았제.

박순국(imaeil팀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