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사퇴...'당권 경쟁' 회오리 예고

입력 2004-04-12 18:34:14

4.15 총선이 끝나면 열린우리당이 당권 경쟁 회오리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당권 경쟁은 대권과도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당권 경쟁의 빌미는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제공했다. 노인 폄훼 발언으로 원내 1당은 물론 과반수를 넘어 개헌선인 200석 이상까지 바라볼 수 있던 총선 구도를 망가뜨린데 대한 책임론이 그것이다.

정 의장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대통령 탄핵의 의미까지 퇴색시킨데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언급해 총선 이후 의장직 사퇴가능성을 시사했다. 12일 급기야 선대위원장직에서 사퇴할 지경에까지 몰렸다.

정 의장은 그간 탄탄대로를 걸었다. 지난 1월 11일 전당대회 이후 당권레이스에서 공약했던 '정당지지도 1위'를 취임 첫날 이뤘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한나라당-민주당에 이은 3위에서 아무리 애쓰도 2위를 벗어나지 못하던 지지도를 대번에 1위로 등극했다.

신이 난 정 의장은 취임 다음날 남대문시장을 시작으로 이른바 민생행보를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그는 민생현장을 챙겨 정당지지도 10%를 올렸다. 이른바 정동영 효과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조해 만든 거사(?)인 '대통령 탄액안 가결'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며 정 의장에게 '대통령의 꿈'을 꾸게 했는지도 모른다. 눈물을 흘리며 서류를 국회의장석으로 던졌던 정 의장 자신도 그같은 후폭풍을 예견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불예견은 열린우리당이 의원직 사퇴와 거리 규탄대회를 계획했다가 국민의 70%가 반대하며 국민들이 분노하자 '없던 일'로 했던데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정 의장이 선장이 된 열린우리당호의 총선가도도 탄탄대로로 여겨졌다. 탄핵풍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헤어날 것같지 않아 보여서다.

한나라당이 뒤늦게 전당대회를 치러 박근혜 대표 체제를 맞았으나 대구.경북지역에서만 바람이 불뿐 부산.경남은 물론 최대 표밭인 수도권에서 미풍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만해도 정 의장측은 '총선 승리=당권 4년=대권'이란 달콤함에 젖어 있었던 듯하다. 정동영 드림팀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정 의장이 대권행보를 시작했다'는 관측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공공연히 제기됐다. 특히 비례대표에 측근 인사 7~8명을 당선권에 포진시켜 "당권 장악이 끝났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좌동연-우강철' 가운데 광주 서구에 출마한 염동연 후보가 한때 대구 동갑에 출마한 이강철 후보와 손발을 맞췄으나 정 의장과 손잡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때부터 정 의장의 이강철 배제론이 불거졌다. 정 의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이강철 인재영입단장은 한때 김원기 전 의장 체제를 무너뜨리고 정 의장 체제를 만든 1등 공신. 그러나 이 단장의 독특한 캐릭터와 파워로 인해 대권 가도에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부담을 느낀 정 의장이 이 단장의 세력약화를 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 의장이 이강철 배제를 꾀한 것은 이 단장이 영입인사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가깝고 김 전 지사가 대권을 노리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정 의장은 노골적이지는 않았으나 대통령과 동향이고 이 단장과 가까운 김 전 지사가 내심 편하지만은 안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강철 베제론은 실제 의장비서실에 있던 이 단장의 최측근을 소외시켜 상황실로 보내고 비례대표 공천에서 "이강철 '이자'만 걸리면 무조건 당선권에서 배제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자연스레 제기됐다.

바늘과 실이었던 정 의장과 이 단장의 관계는 이때부터 금이 갔다. 화난 이 단장은 대구.경북 후보 전원 사퇴란 카드를 꺼내들어 박찬석 전 경북대총장을 비례대표 6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단장은 자신의 지역구가 급해 중앙당을 챙길 여유가 별로 없었다.

사단은 엉뚱하게 돌출됐다. 정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이 그것이다. 이 발언은 대구.경북의 보수층에 분노를 안겼다. 특히 고령화 사회인 경북에는 치명타였다.

열린우리당의 대구.경북 교두보 확보가 지상과제였던 이강철 후보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이 단장이 정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도 하지 않으면서 대구.경북의 선거를 이렇게 망칠 수 있느냐"고 발끈한 것은 당연지사. 최근 정 의장이 대구에서 열린 프로야구개막식에 참석해 이 단장과 서로 조우할 기회가 있었으나 애써 피하기도 했다.

정 의장은 결국 한마디 말 실수로 의장직과 선대위원장에서 물러나 사실상 '대권의 꿈'을 접었다는 게 정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영남에서의 참패로 지역구도를 또다시 만든 책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대권은 너무 먼 당신'이 됐다는 얘기다.

차기 당 의장은 일단 김근태(金槿泰) 원내대표가 맡을 것이란 다소 성급한 관측이 당 안팎에 나돌고 있다. 정 의장의 낙마로 총선 이후 바로 시작될 대권레이스에는 김 원내대표과 김혁규 전 경남지사, 이부영 상임중앙위원 등이 가세할 것으로 보인다. TK대망론으로 경기도 군포에 출마한 김부겸 의원이 거명되기도 한다.

하지만 순풍에 돛을 단듯 보였던 정 의장이 4개월 남짓만에 낙마한데서 보듯 정치는 너무도 가변적이라 지금 대권까지 예견하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하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사진 :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이 12일 저녁 당사에서 '노인 폄하' 발언으로 인한 당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지고 선대위원장직 전격사퇴를 발표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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