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한국의 여성리더들

입력 2004-03-26 13:57:25

"미모가 뛰어나거나 돈이 많거나 그것도 안되면 정말 남자들도 꼼짝 못할 무서운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몇 해 전 여기자 세미나에서 대 선배가 일러준 여자 간부의 성공조건이었다.

물론 60이 넘은 선배의 흘러간 옛 이야기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전국에서 참가했던 여기자들은 '아직도 일부분은 유효하다'며 공분했던 적이 있다.

여성들이 일정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들을 가로 막는 제약은 참으로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남자처럼 폭탄주를 마다 않고 술자리를 지키는가 하면 어떤이 들은 여성성으로 무장한 채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실력만이 살길이라며 무서우리만큼 일과의 전쟁을 벌이는 여성도 있다.

뱃속부터 성차별을 겪은 여성들이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때론 처절하고 눈물겹기까지 하다.

적어도 여성의 눈으로 볼때는-.

바야흐로 한국에도 여성정치시대가 열리고 있다.

지역출신 박근혜 의원이 39년 만에 여성으로 당대표가 됐다.

추미애 의원 역시 총선을 진두지휘할 선대위원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3당의 대변인 역시 모두 여성이다.

여기에다 소신과 당당함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강금실 장관이 연일 지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하고 있고 총선을 앞두고 원내교섭단체에서 공천된 여성후보만 30명을 넘었다.

이런 이유로 여성리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달라지는 여성정치 현실

그동안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시혜나 배려, 정치적 이용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여성' 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심의 표적이 되면서 여성장관들은 단명했다.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 보기도 전에 우리사회의 왜곡된 관심이 이들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

국회회의장에서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치는 장관이 있는가 하면 당당히 여성성을 거부한 채 '남성보다 더 남성다운' 돌파력으로 정치를 하는 여성도 있다.

또 가녀린 작은 손으로 거대 야당을 이끌어 가는 녹록지 않은 여성도 있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는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화여대 박통희 교수는 최근 '편견의 문화와 여성리더십'이라는 책에서 여성리더십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자리더는 억척스럽고 이른바 여장부다워야한다는 것은 기존의 편견이라고-.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때 최고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물론 이때 실력은 기본이다.

실제로 여성 최초로 차관직에 오른 김송자씨는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리고 음담패설로 분위기를 돋우는 남성적 문화를 적극 활용했다.

여성최초의 경찰서장인 김강자 전 총경은 명백한 실적으로 승부하는 길을 택했다.

이에 비해 전재희 전 시장과 한명숙 김명자 전 장관은 치밀함과 탈 권위 그리고 튀지 않은 처신 등으로 전형적인 여성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각자가 자신의 성격과 몸에 맞는 리더십을 개발한 것이다.

◇여성계 돌아보는 계기 있어야

그러나 아직도 여성을 보는 눈은 차갑다.

같은 사안을 놓고서도 남자와 여자는 다르게 때로는 더 엄격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살림의 여왕'이라며 칭송을 받았던 지금은 내부자거래로 곤욕을 겪고있는 마사 스튜어트는 "같은 일벌레라 해도 남자의 경우 일 잘한다고 말하지만 여성의 경우 성질 더럽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라며 한탄한 적이 있다.

여성정치시대를 맞으면서 벌써부터 '여성귀족'이니 '태생적 한계'니 걱정 섞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지금 여성 정치인이 누리는 이익은 남성정치인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이고 여성할당제에서 보듯 여성정치인에 대한 인위적인 잣대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결코 틀린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계는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너무 쉽게 안주하지 않았는지, 자기 계발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하지 않았는지, 사회성 결여를 순수함으로 돌려버린 적은 없었는지, 편가르기의 폐쇄성은 없었는지 등등….

곧 총선이다.

도덕성과 실력, 깨끗함으로 재무장한 여성리더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김순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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