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 대기자의 책과 세상-오래된 미래

입력 2004-02-28 08:48:54

어릴 때의 기억들은 오래 간다.

오래 갈 뿐 아니라 자라면서까지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 기억들의 배경이 시골이면 더욱 그렇다.

흐르는 개울물에 고기 잡던 일이나 논 가운데서 손 호호 불며 얼음지치던 개구쟁이 시절. 그러나 두껍게 얼던 강물도 지금은 기껏 살얼음 살짝 얼기가 고작이다.

이처럼 우리의 환경은 변했고 변해도 너무 변했다.

우리들이 관심없고 더러는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것이다.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탐험가가 열심히 들소를 스케치하고 있다.

수우족의 한 인디언이 이를 지켜보며 투덜거린다.

"저 사람들이 들소들을 책 속에 넣어 갔다.

그때부터 우리들은 들소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고.

그렇다.

들소들은 보금자리를 잃었다.

어디 들소뿐인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인디언들의 삶은 또 어떻게 변했나. 백인들의 그 음흉한 보호로 알코올 중독 끝에 이른 파경의 삶이 토픽으로 온 지구촌에 메아리쳤을 뿐이다.

들소와 인디언.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환경문제는 갈수록 굵직굵직해지고 있다.

가공할만한 충격과 엄청난 재앙이 미구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강 건너 불이다.

환경은 넌픽션이다.

꾸며질 수 있는 가공의 픽션이 아니다.

생생한 현장과 현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래서 치열하다.

치열하다는 것은 인류에게는 헤쳐나가는 지혜를 가다듬게 하는 것 같지만 그건 폼이다.

차라리 치명적인 재앙이 들이닥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내가 그 재앙의 한 가운데에 서 있지 않으면 아무리 대재앙이라도 무심해 진다는 점이 무서울 뿐이다.

'오래된 미래'는 그런 무심을 아리도록 일깨워 주는 책이다.

은근히 그러면서 너무도 아쉬운 우리 것에 대한 향수를 부추겨 주기에도 족한 책이다.

이미 대부분 상실해 버린 우리의 전통과 공동체의 아름다움에 대입해 보면 문득 이것은 분명 아닌데 어쩔 수 없이 흘러가버린 우리들의 시절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절실하게 생각나게 해준다.

흘러간 물은 다시 제 자리를 찾지 않는다.

환경은 언제나 당시의 어리석음을 후회한다고 되돌아 갈 수 있게끔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좋은가. 그 답을 찾아서라기보다는 스스로 해답에 가까워지는 실마리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 언어학자다.

지난 75년부터 히말라야의 오지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에 머물면서 천년을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티베트 불교문화에 뿌리를 둔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가고 있던 그곳의 공동체에 매료돼 장기 체류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지녔던 자신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가 라다크에서의 것과 비교되면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 질주하는 산업사회에 어떻게 부닥치고 있는가를 담담하게 전해준다.

지난 96년에 이 책이 대구의 녹색평론사에서 발간돼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순전히 현지의 체험에 기초를 둔 내용들이 섬세함과 더불어 시종일관 잔잔하다.

개방과 더불어 라다크의 전통들이 그 뿌리로부터 하나씩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본 저자는 라다크도 이런데 하물며 지구촌의 다른 곳은 어떨까 하는 심정으로 인류사회의 장래를 설득력있게 염려하고 있다.

서구화, 세계화로 우선은 풍요롭고 안락한 듯 보이지만 결국 그것은 획일적이고 기계적이며 기술에 의존하다보니 곳곳의 다양성과 건전성은 한줌 재로 변해버리고 눈 앞의 이익에 건강하고 평화로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라다크의 순차적인 적응을 예로 들면서 밝히고 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거칠고 불편했지만 그러나 깊은 물속같은 편안함이 유지되어온 라다크의 환경은 다름아닌 본능적인 생태적 지혜와 철학이었음을 강조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받아 들였던 기술문명에 서서히 잠식되는 그곳의 운명에서 오래된 것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무한한 지혜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우울한 장래만을 바라보고 옛 시절에의 향수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다는 저자의 견해가 또한 더욱 호소력을 던진다

불균형하게 넘치는 물질과 소비의 시대에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조화, 다시 말하면 개발에 따른 파괴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삶에의 헌신이 뒤따르는 모범적인 사회재조직의 가능성 등 대안들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 해에 넉달을 일하고 나머지는 잔치를 벌이며 진정한 삶의 즐거움에 만족했던 라다크인들. 부분적으로 자립에서 오는 검소한 생활의 라다크인들. 그들 사회의 인간적인 가치를 부각시키고, 라다크 사람 각자가 서로서로의 근원적인 인간욕구에 대하여 보내는 뿌리 깊은 존경심, 그리고 자연적 환경의 제약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따뜻한 마음씨, 만족감을 우리 모두가 찬양하고 배워야 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서문도 괜찮다.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 우리는 숱하게 잃어버린 우리의 기억들 때문에도 더욱 가슴이 아린다.

개발과 발전만 믿어왔던 우리들은 언제나 뒤늦게 어리석음을 탓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늦지 않음 역시 이 책을 통해 은근히 들을 수 있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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