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부부-(2부.7)당당해진 이혼.재혼

입력 2004-02-13 09:27:03

이혼은 분명 결혼 실패의 결과물이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결혼 실패를 인정하고 이혼을 선택하고 있다.

나혜석의 '이혼고백서' 이후 자유롭게 또는 당당하게 이혼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사항 중 하나이기도 하다.

50이 넘어 이혼하는 '황혼이혼'이 늘고 있고, 나이 많은 세대도 "이혼은 흠이 아니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이혼은 '당당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조이혼율(인구 1천명당 이혼건수)은 3.0건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다.

결혼대비 이혼율도 47.4%에 다달아 OECD회원국 중 3위다.

혼인건수는 줄어들고 이혼건수는 늘어난 데 따른 결과다.

다른 나라에 비해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우리 사회가 이혼 공화국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혼을 꿈꾸는 부부들

'이혼 절대 불가'에서 '이혼은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사회풍조가 바뀌면서, 갈등을 겪는 부부들은 한번쯤 이혼을 생각해 보곤 한다.

이혼 상담을 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는 한 변호사의 홈페이지에는 많은 이혼 상담 사례가 올라오고 있는데, 여전히 대다수는 여성들의 상담이다.

이런 것도 이혼의 사유가 되는지를 물어오는 사람에서부터, 상대방이 이혼에 응해주지 않아 괴로운 마음, 구체적인 이혼의 절차, 재산 분할이나 양육권 문제를 상담해 오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연은 매우 다양하다.

또 자녀들이 부모의 이혼을 바라고 대신 상담을 의뢰해 오는 경우도 있다.

한편,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경제적 문제(27.1%).배우자 외도(26.0%).성격 차이(26.0%), 80년대에는 성격차이(27.5%).배우자 외도(23.5%).경제적 문제(22.5%), 90년대에는 성격차이(30.8%).배우자 외도(19.5%). 경제적 문제(14.0%)가 주요한 이혼 사유로 변해왔다.

△이혼은 해체가 아니라 적응의 문제다.

이러한 이혼 급증을 단지 가족 해체, 나아가 사회 해체의 징후로 포착하는 움직임에는 경계가 필요하다.

물론 이혼에 따른 위기 의식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의 결혼제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질 때만 가치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중첩되는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것은 가치가 다원화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대부분이 기존의 사회구조와 새롭게 바뀌는 가치 및 구조가 충돌을 빚는데서 오는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자아 의식이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관계(특히 부모세대)에서 여성에 대한 기대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남편도 시부모도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가정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남녀의 성별 분업이 파괴되고 있음에도 남자들은 가정생활에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했다.

육아와 집안 일에 대한 훈련도 그렇거니와 누군가와 정서적 교감을 형성하는 훈련도 받지 못한 남성들은 '부드러운 남편, 자상한 아버지'를 원하는 시대에 겉돌 수밖에 없다.

△이혼은 개인 탓보다는 사회 탓

결국 우리나라에서 이혼이 봇물 터지듯 늘어나는 것은 한 개인의 잘못이나 나쁜 인연을 만난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가족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 갈등은 바로 이혼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문제, 육아, 노후 등을 모두 가족 단위로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남편은 사력을 다해 돈을 벌고 아내가 육아를 전담하거나,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남의 손에서 키워야 한다.

노후 준비도 개인이 능력껏 해야 하고, 내 집 마련과 실업 대비도 가족의 몫이다.

이렇다보니 작은 문제로도 가족관계가 순식간에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실업, 자녀의 탈선, 노부모의 병환, 가족 구성원의 질병 등은 멀쩡하던 가족 관계를 한순간에 악화시킨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역설하면서도 정작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장치 마련에는 등한시해온 결과다.

△이혼 후에 행복해지는 법, 그리고 성공적인 재혼

'지옥 같은 결혼생활이라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 명제에 반대표를 던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듯 이혼 또한 만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자녀가 있을 경우, '성공적인 이혼'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

남성은 (엄마 없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하고, 여성은 경제적인 자립이 힘들기 때문에 자녀 양육을 힘겨워 한다.

그렇다보니 이혼 후 자녀를 유기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또 자녀 양육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해도, 자녀를 매개로 서로 접촉하면서 갈등이 계속 진행될 소지도 있다.

이혼을 행복을 위한 선택 중 하나로 인정하면서, 재혼 가족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활발하다.

성공적인 재혼에도 사회의 몫이 있다.

가족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재혼가족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호적제도 개선, 핏줄만 가족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끼리 돕고 사는 공동체로 재혼가족을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결혼 생활과 이혼에 따른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부여하지 말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결혼제도를 지원함으로써 이혼을 줄여나가는 노력이다.

박경(대구사회연구소 연구원) parkk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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