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한문!-破字놀이

입력 2004-01-16 09:13:20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선생님! 한자는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가요?"라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

그러나 궁핍한 변명밖에 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자는 쓰면서 익혀야 한다'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외우라는 말은 아니다.

어려운 한자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한자로 즐길 수 있는 조금 유별난 놀이를 소개한다.

조선 中宗(중종) 때 靜庵(정암) 趙光祖(조광조-정암은 그의 호: 1482~1519)는 왕이 되려는 욕심이 있다고 하여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증거물로 삼은 것이 꿀을 발라 벌레들이 파먹고 생긴 '走肖爲王(주초위왕)'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 나뭇잎이다.

달릴 '走(주)'자와 닮을 '肖(초)'자를 합하면 바로 '趙(조)'라는 글자가 되므로 당시 백성에게 신망을 받고 있던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중종이 그를 죽인 것이다.

요즘같이 다양한 오락이 없던 당시 사람들은 '파자놀이'로 유희를 즐기곤 하였다.

'破字(파자)'란 한자를 하나하나 쪼개어 그 뜻을 달리 풀이하는 것이다.

파자놀이는 '봉산탈춤' 등 문학작품에서 자주 언어유희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심청가'에 보면 심봉사가 다른 봉사와 서로 通姓名(통성명)을 하는 장면이 있다.

심봉사가 자신의 이름을 파자하자 다른 봉사가 또한 자신의 이름을 파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내 姓字(성자: 성씨로 쓰는 글자)가 전에는 너무 좋아 침들을 삼키더니 지금은 형편없이 나빠서 남의 앞에 내놓자면 눈물이 먼저 나와 말할 수가 없구려. 처음 내 성자는 富者(부자)라는 '富(부)'자로서 '弼(필)'자를 쓰신 우리 선조는 만고에 유명하더니, 자손이 점점 형편없어져 가진 재산 다 팔아먹고, 심지어 先山(선산)까지 다 팔아먹은 후에 다시는 팔 것 없어, 姓字(성자)를 헐어 놓고 조금씩 팔아먹을 때에, 나무 '木(목)'자 木서방이 갓벙거지를 사다가서 모자로 쓰고 나니[ +木] 지금은 宋(송)씨 되고, 나 '余(여)'자 余서방이 한 '一(일)'자 사다가서 아랫 방석으로 놓으니[余+一] 지금은 '金(김)'씨 되고, 입 '口'(구)자 口서방이 입 하나만 가지고는 姓字(성자)가 초라하다고 입 '口'자를 또 사다가 제 것하고 합쳐 놓으니[口+口] 지금은 '呂(여)'씨 되어, 사 간 사람 세 집들은 명문가가 되고, 팔아먹은 내 신세는 갈수록 형편없어 남은 것을 마저 팔려고 아무리 서둘러도 세금이 무섭다고 백 냥에도 살 사람이 없으니, 그저 가지고 다니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성씨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田(전)'씨이다.

'富(부)'자를 파자하면 ' + 一 + 口 + 田'이 되는데 이 가운데 ' ', '一', '口'은 팔았으니 남은 것은 '田'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설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이런 '파자(破字)'놀이를 즐기며 한자를 익히는 것도 좋겠다.

김상규(대구 청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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