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5)-형제봉 (10)

입력 2004-01-06 15:24:11

10.

낮 12시 정오. 형제봉 바로 턱밑 고개에서 나를 포함 꼴찌 일행을 부르는 대장님의 목소리가 산을 짱짱 울린다. "야 빨리 와". 오래 기다려서 지쳤는지 잔뜩 화난 목소리다. 늘 후미인 나. 나의 주장. '유유자적 대간팀'이 정답이죠. 대장식으로 하면 '양반 대간팀'.

근래, '느림의 철학'이 환영을 받고 있다. 한국 民族은 웃기는 民族이다. 자동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에서도 뛰어 올라는 民族이다. 뭐 그리 급한지. 그래서 이혼율이고 자살율이고 출산율이고 불과 20년 사이에 뒤쪽에서 얼쩡거리다가 세계 랭킹 안에 싹 들어와 버렸나. '은근과 끈기의 民族'이 어떻게 '초조와 스피드의 民族'이 되었는지.

현대판 '초스피드 사고와 행동'이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시대의 산물인가. 혹시 그런 民族성이 개발독재를 만든 것은 아닌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가 여기 또 있네. 머리 나쁜 이헌태는 이런 질문만 나오면 넘어가죠.

'만만디'의 나라 중국. 예전 등소평이 일본을 방문해서 신칸센 고속철도 탑승소감을 묻자 " 이런 땅떵이도 좁은 나라에 이렇게 서둘러 갈 필요가 뭐 있느냐". 대국이라고 꼬냐. 한국도 조만간 고속철도가 생기는데. '느림'이란 작가 밀란 쿤테라는 "느림의 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반비례한다" 맞습니다, 맞고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피에르 쌍소에게는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다. 앞으로 느리게 삽시다. 토끼보다는 거북이. 아니죠. 상황에 따라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는 , '토북이 만세'.중국도 '만만디'가 아니고 은근 설쩍 '이문'은 다 챙기는 겉만 '만만디'더라구요. 대국의 풍채를 버리고 좀쌩이가 되었더라구요.

능선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산상 시낭송회도 가졌고 브랜디주를 돌렸다. 황지우 시인의 시 두편이 낭송되었다. 한 편은 '망년'이란 시.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의사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 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다른 한 편은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라는 시.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그러므로,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환갑을 이제 눈앞에 닥친 쉰일곱의 유영래 대장님이 고른 시 같은데. 나이 드신 다고 이렇게 연말을 슬픈 분위기, 허무한 분위기로 마구 마구 끌고 가도 되는 것입니까. 나이를 또 한 살 먹고, 죽음 앞으로 또 한 발자국 더 다가서니 아, 슬프다. 아, 인생무상이여. 이헌태, 또 '오바'하네.

슬픈 감정을 생산적으로 전환합시다. 주자의 한 말씀. 명심보감, 권학편에는 "오늘 배우지 않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에 배우지 않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날과 달은 가고 세월은 나를 늦추지 않는다. 아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이헌태의 변형된 어록. "늙은 것은 자신의 허물이 아니지만 헛되이 늙은 것은 자신의 허물이다." 이런 명언이 없으면 앞으로 이것은 이헌태의 명언으로 정리할 테니, 전세계 누구도 손대지 마라, 찜해 두었다. 먼저 찜한 놈이 장땡. 니 잘났다, 그래.

여러분, 평생공부 아시죠. 이헌태는 그래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고 있죠. 잘났다, 잘났어. 누구집 아들이고, 해석이 더 멋드러진다. 이빨 좋고. 이빨의 사촌 혀 아시죠. 공자는 제가 키가 크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공자 왈, "군자는 행동으로 말하고 소인은 혀로 말한다"고 했죠. 이헌태, 공자님께서 하신 소인은 그 소인이 아니고 쫌생이. 알았나. 네.

브랜디술도 인상적이었다. 코펠에 브랜디술을 한 병 채 다 부어 따뜻하게 데웠다. 유영래 대장은 유럽 사람들이 한국의 정종처럼 브랜디를 데워서 마시더라는 것. 위스키는 차게 해서, 브랜디는 데워서 마신다나. 몸이 으시시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꾜냑 한잔이 온 몸을 녹여주고 입안에는 향내가 가득 퍼지고. 다음 산행때, 브랜디술에 포도주도 넣고 설탕도 넣으면 술맛이 기가 막힌다고 느스레. 육포 안주도 너무 좋았다.

대략 20여분가량, 휴식을 취한 뒤 왼쪽으로 꺽어 형제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물기가 빠진 퍼슥한 잔설을 밟으며 계단을 오르다시피 발걸음을 뚜벅 뚜벅 한발 한발 내딛으니 드디어 이번 산행의 최정상 암봉인 형제봉(828미터)에 올랐다. 각자 멋을 뽐내는 네 개의 우뚝 선 큰 바위가 있어 4형제인가. 멀리서 보니 2형제였는데.

형제봉에 오르니 모두들 일제히 탄성을 내지른다. "와, 너무 아름답다". 얼마만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터져 나오며 내지르는 감탄사인가. 지리산, 덕유산에서 잃어버렸던 언어. '아, 백두대간이여'. 사촌인 '아, 고구려'. 뭐야. 요새 열불 나는 일이 있어서요.

중국이 세계 사학자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굳이 고구려역사를 자기네 중국역사에 포함시키려고 한다고 하네요. '사해동포주의' 구만. 아니고 '만주땅 지키기' 차원이라고 하네요. 누가 만주땅 돌려달라 그랬나. 자격지심이 아닐까. 중국 나라이름에서 수준이 나와있잖아요. 나라 수준이 '상' 은 아니고 '중' 내지 '하' 수준이니 이해가 가는구만. '한심한' 민족이니 한족이지. 한국도 '한심한 나라'인데. 그래서 한민족. 똑 같은 한족이네.

사실 현재의 드넓은 중국 땅이 100년 후에 온존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고 보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 걸.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러 나라로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도 없는 나라이니.

형제봉에서 휘 둘러본 산들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웅장하고 육중한 산들이 7겹,8겹으로 켜켜이 쌓여 있으며 가히 용이 승천하기위해 몸을 트는 것 같은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수만년의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채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연출하고 있다.

일망무제 하늘 저 편에는 희뿌연 구름과 안개가 상서러운 서기를 내뿜고 있다. 서쪽 아득하게 구병산이 날카롭게 솟구쳐 있다. 북서쪽에는 풍모가 당당한 속리산이 두드러진 어깨를 자랑하면서 옆으로 쭉 뻗어있다. 북쪽으로는 청화산(984미터)이 이어져 있다.

병풍처럼 펼쳐진 저 장엄한 산악과 기상, 나는 눈을 지긋이 감는다. 대자연과 내가 함께 뒤섞이는 '무아지경, '몰아일체'의 경이에 빠져 스스로 탐닉해 본다.

수행에서 득도하는 방법 3가지. 1) 불통만 튀어도 순간적 불이 붙는 '화약' 2) 숯불을 피우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숯' 3) 말려야 하고 불이 붙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젖은 석탄'. 지금 이헌태는 '화약' 같은 환희와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헌태 니, 뭐야. 니가 무슨 득도. 위의 세가지 득도 순간은 섹스와도 관계 있네. 아무리 '미성년자 불가' 종주기이지만 심하네. 넘어갑시다.

눈을 감는다. '참자아'가 아닌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참자아'만 남는다. 방을 꽉 채우고 있는 물건들만 치우면 빈 공간은 저절로 드러난다. 아, 좋은 말씀.

한 폭의 수묵화. 하얗고 파란 하늘 아래 연한 황갈색 산이 주색, 여기에 봉우리에 언뜻 언뜻 하얀 잔설과 화강암 바위, 푸른 소나무가 보조색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그림 전체는 갈색의 톤이다. 이게 바로 겨울산의 색깔인 것이다.

아, 이게 바로 백두대간이야. 나도 에레베스트 정상에 올라선 사람처럼 우뚝 선 형제 바위 위에 올라 서서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이헌태 만세. 형언하기 힘든 이 비경. 이 행복.

속리산의 전경을 보려면 속리산 속에서가 아니라 여기 바로 앞에 놓여 있는 형제봉에 와야한다고 한다. 숲속에 있으면 나무만 보이고 숲을 못 보듯이.

나는 복(福) 가운데 최고가 '안복(眼福)'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돈복, 섹스복, 권력복, 명예복, 최근 먹여 살려주는 처복, 자식복도 있지만. 역시 좋은 경치를 보는 게 제일 좋다. 조상들도 " 산수는 정서를 순화하고 감정을 화창케 한다고 했다". 왜 과거 선인들이 심심산골로 끼역끼역 들어가고 산천을 유람했겠는가. 답은 뻔하다. 자연이, 그래도 도 닦기 좋고 머물기 좋으니까 그 곳에 갔을 것 아니겠는가.

내가 재력이 없어서 그런지, 부유층에 부러운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여행이다. 돈만 있으면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사람들은 과거사람 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행복하다.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 21세기의 최고 발명품이 자동차라고 하지 않았나. 연장선상 속에 비행기도 마찬가지. 신라 최치원이나 노자가 신선이 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인은 사실상 그들이 바라고 바랐던 신선노름을 하고 있다.

비행기 타고 서울서 제주도까지 한시간만에 날라간다. 이것이 축지법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미국에 있는 사람과도 통화하고 이제는 화면을 통해 얼굴 보면서 대화한다.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다만 마음을 읽고 운명을 내다보는 능력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혹시 누가 아나, 이것도 몇 백년 후에 해결될지. 하여튼 현대인은 신선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헌태 신선'. 왜 그러십니까. 노자나 최치원선생이 타임머신 타고 다시 현대에 온다면 기절초풍하실 것이다. '도 닦아도 헛 일'이라고 자괴감에 빠질 지 모른다. 현대인은 도 닦지 않아도 신라때 일등도인보다 더 신선같이 사니까. 개인이 도 닦는 게 아니고 인류가 한덩어리로 도 딱꼬 있구만. 묻혀서 도인되는 거지뭐.

산과 자연 얘기가 나온 김에. 인디언들도 자식에게 산, 즉 자연을 상속으로 물려주나 봐요. 이렇게 말한다고 하네요. "너한테 남겨줄 것 조차 없다. 하지만 아마 산만은 언제나 변함이 없을 거다. 너는 누구보다 산을 좋아하니 다행이다".

이헌태도 아들 이원교에게 "물려줄 게 하나도 없다. 다만 한국의 아름다운 산, 다 니해라. 돈으로 따지면 수천조가 넘는다. 그리고 자주 올라가서 구경하고 즐기라"고 하면 뭐라고 할까. '또라이 아버지'라고 하겠지. 인디언하고 우리하고 같은 핏줄인데 우째 이리 다르노.

놀면 뭐합니까, 장독 깬다고. 추가 하나 더. 하늘 얘기. 탤런트 김하늘 얘기가 아니고 우주공간의 하늘. 공자의 유학도 쉽게 풀면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하늘의 이치에 따르자는 것. 공자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고 했다. 또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했다.

하늘을 가지고 성현이나 영웅이 될 싹수가 있는 지 테스트 할 수 있습니다. 사례 세 가지. 성리학을 발전시켜 동양을 오랜기간 주름잡았던 주자. 그 주자가 어린 시절, 사색광이었죠. 그 화두가 "저 하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였다고 하네요. 병까지 생길 정도로. 주자의 핵심철학은 '수기치인',즉 자기를 완성시키고 다름 사람을 다스리도록 하라는 것이죠. 하늘만 쳐다보면 주자처럼 되나 모르겠네. 하늘만 맹탕 쳐다보면 멍해지지 뭐.

또 하나. 현재의 중국 국경개념을 만든 중국 한무제가 성에 안 찼든지 어느날 "저 은하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면서 장건이라는 사람을 서역까지 보냈다고 하네요. 역사상 '실크로드' 개척의 첫 시도였죠. 장건은 포도와 포두주등 다양한 물품을 중국에 가지고 왔고 반대로 로마에 비단을 가져다 주었다고 하네요.

이 비단이 로마를 망하게 한 큰 요인이 된 것 아세요. 그 당시에는 비단옷이 '섹시옷' 이었나 봐요. 요새로 치면 몸이 다 드러나는 망사의 란제리 수준이라고나 할까.

로마 세네카의 '행복론'을 보면. "비단옷은 신체를 보호할 수도 없으며 부끄러움마저 가릴 수 없는 옷이다. 그 옷을 한번이라도 입어본 여성이라면 마치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이점이 침실에서조차 남편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를 꺼려하는 부인네들이 공공연하게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상인을 부추겨 먼 미지의 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다".

로마 원로원에서는 돈이 너무 빠져나가자 비단수입을 금지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로마시대 사람들이 보면 현대 아가씨들은 훌라당 벌거 벗고 다니는 것이지 뭐,

세번째.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면서 인간을 '신화의 세계' 로부터 발을 빼게 해서 '세계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개념적 사유를 시작케 한 서양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 기원전 625년경 사람이죠.

그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걷다가 시궁창에 빠졌다고 하네요. 여자 노예가 "당신은 하늘에 뭐가 있는 지는 알고 싶어하면서도 자기 발 밑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군요"라고 비꼬았다고 해요. 하여튼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별을 쳐다봐야 해. 별을 쳐다보면 무조건 철학자라고 봐야해요. 단 예외 나라 한국. 우리나라에서는 별 쳐다보면 코미디 프로에 바보부자로 나오는데. 잉.

또 한국에서는 군의 장성, 즉 별단 분들이 별 갖고 장난치다가, 즉 진급때 돈 먹고, 감옥에 가서 별을 또 다는 경우가 흔해요. 감옥의 죄수들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으니 한국을 '별의 별 나라', 별꼴 나라', '별 볼일 없는 나라' 하여튼 '별공화국'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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