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술과 전쟁을 벌이는 계절'이다.
송년회 등 각종 모임에 참석하느라 술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술을 즐기며 마시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술이 두렵기만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술, 전쟁같은 사랑의 기록'(캐롤라인 냅 지음.고정아 옮김.프롬북 펴냄)은 책의 제목부터 사뭇 의미심장하다.
영어판의 원제는 'DRINKING A Love Story'. 언뜻 술에 대한 예찬쯤으로 속단하기 쉽지만 한 알코올 중독 여성의 처절한 삶의 기록이다.
회고록인 만큼 우선 책의 저자에 대해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캐롤라인 냅은 1959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의 명문 브라운대학을 우등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라나 활기차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으로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했다.
그러나 성공가도를 달리던 저자는 1995년 '술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재활센터에 입원했다.
힘겹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저자는 안타깝게도 올해 6월 40대 초반의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은 "나는 마셨다"란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10대 초기에 술을 마시기 시작해 36세에 스스로 재활센터에 입원하기 전까지 줄기차게 술을 마셔댔던 저자의 '술과의 사랑과 전쟁, 그리고 헤어짐'의 기록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나는 기뻐서 마시고, 불안해서 마시고, 지루해서 마시고, 또 우울해서 마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는 병석에 있는 아버지의 장식장에서 술을 훔쳐 마셨다". 저자는 몇 번이고 술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미 진성 알코올 중독자가 돼 버린 저자에게 술은 너무도 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인생을 통틀어 내게 그(술)보다 중요한 관계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런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런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술꾼은 아니었다.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로 자신의 중독 사실과 무수한 숙취를 사람들에게 깜쪽같이 숨겼다.
그러던 어느날 저자는 "어쩌면 술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술을 끊기로 결심한다.
이후부터는 재활원에서 금주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이야기와 다른 알코올 중독자들의 경험담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인생에서 부딪히는 고민들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술에 의지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나아가 '나는 절망적인 불행에 빠져 있다.
따라서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그동안의 그럴듯한 논리를 다음과 같이 뒤바꿔야 진실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따라서 나는 절망적인 불행에 빠져 있다".
연말을 맞아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만취해 밤거리를 헤매는 주당(酒黨)들이 한번쯤 되새겨야할 교훈이 아닐까싶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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