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지도 벌써 석달.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대도시의 번화가 등은 연말 분위기에 맞춰 상가마다 화려한 네온등을 장식하고 있지만 경북 북부의 산골마을에는 아직도 한숨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나마 겨울이 오기전 새 집을 마련한 수해민들은 다행이지만 건축비 등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건축을 포기한 수재민들도 적잖다. 어쩔 수 없이 부숴졌거나 침수된 가옥을 대충 정리해 살고 있는 이들은 가옥 붕괴의 위험 속에서 추위에 떨면서 겨울을 보내야 할 참이다.
영양읍 가천1리 박문석(46)씨는 수해이후 가족과 컨테이너에 기거하면서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 사과밭에 온 가족이 매달려 지금까지 폐목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사과밭이 워낙 넓어 앞으로 몇달이 더 지나야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해에는 '루사'가, 올해는 '매미'로 2년 연속 수해를 입어 주택이 부숴진 박씨는 이번엔 아예 아래층은 철골조로 비워두고 이층에 주택을 신축 중에 있다.
그래도 박씨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건축비가 없어 집 짓기를 포기하는 수해민들도 적잖고, 집을 지으려고 해도 건축 허가가 나질 않아 집짓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의성군 구천면 위성1리 이장인 최상득(55)씨는 구천 미천제방이 붕괴되면서 가옥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건물을 신축해야할 형편이지만 포기해야만 했다. 20년전 무허가로 집을 지었다는 이유로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ㅍ
최씨는 "가옥이 침수되면서 붕괴 위험이 적잖아 새집을 짓기로 했으나 지목변경이 안돼 건축을 포기했다"며 "수해민들에 대한 행정기관의 배려가 아쉽다"고 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박종우(52.구천면 내산리)씨의 사정은 더 딱하다. 최씨와 같은 날 수해를 당했던 박씨는 쌀농사 6천평을 소작했으나 임대료도 못줄 형편에 정부가 수해복구비로 지원하는 1천440만원으로는 도저히 집을 지을 엄두를 못내고 있다.
박씨는 "미천제방이 붕괴되면서 축사와 과수원, 가옥을 잇따라 덮쳐 수해피해가 수천만원을 넘어서고 있는 마당에 집 지을 돈이 어디있으냐"며 "집 짓는 일 보다는 당장 찬바람을 막는 일이 더 급하다"고 했다.
만신창이가 된 농경지를 바라보며 재기의 의욕을 다지는 수해민들도 적잖다.
오수창(63.영양군 일월면 도계2리)씨는 "760평의 논이 모두 자갈밭으로 변해 쌀농사는 완전히 망쳤지만 농사를 포기할 순 없지 않는냐"면서 "논에 새 흙을 넣어 내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김한섭(76.영양읍 기산리)씨도 "올해는 이른 봄부터 고추, 배추밭에서 흘렸던 땀방울을 수해가 깡그리 앗아가 버렸지만 이제는 모두 잊고 내년을 다시 기약할 수 밖에 없다"며 "농사꾼이 농사 외에 달리 할게 뭐가 있느냐"며 재기의욕을 다졌다.
매년 비만 오면 일대 농경지가 흙탕물로 가득차 '침수에는 이골이 났다'는 의성군 비안면 이두.외곡리 주민들은 군청이 제방을 설치해 주겠다고 약속하자 내년부터는 '농사다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마을 장일환(61) 이장은 "이제까지는 형식적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내년부터는 정말 제대로 된 쌀농사를 지어볼 참"이라고 했다.
수해로 가옥이 무너지자 삶 마저 포기하려고 했던 김분식(82) 할머니(본지 9월23일 27면 보도)는 최근 자식들이 십시일반 보탠 돈과 정부지원금으로 아담한 조립식 건축을 신축,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요즘 경로당은 물론 인근 마을까지 나들이를 다닐 정도로 마음이 가볍다"면서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한편 경북 북부에서 가장 피해가 많았던 영양을 비롯 청송.의성 등은 현재 간헐적으로 수해복구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본격적인 복구공사는 설계용역이 마무리되는 이달 말쯤 시작될 예정이다.
장영화.김경돈.이희대기자.
사진:영양군 영양읍 가천리 박문석(46)씨는 3개월째 폐목 정리작업에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폐목은 사과밭 1만7천평을 가득 메우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