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대란(중)-카드남발, 정부 팔짱만

입력 2003-11-26 11:08:38

카드 발급과 관련한 일화 하나. 연전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부임 초기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 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고위 인사로서 누구보다도 확실한 신분을 지녔지만 그는 카드를 발급받지 못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보다도 미국의 은행과 거래한 실적이 없다는 것이 거절당한 사유였다.

신용사회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은 신용 평가를 철저히 한 후에 카드를 발급한다.

카드를 발급받은 고객도 그 신용을 지키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카드를 사용한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의 신용카드 정책은 급속히 카드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서 신용 능력에 대한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고객을 확보하다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카드사의 부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99년 2월초 당시 DJ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카드채 발행 한도를 자기 자본의 10배로 확대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카드사의 카드 발급을 빠르게 확대시켰다.

정부는 카드사들이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회원의 신용관리를 당연히 철저히 할 것으로 생각하고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금융감독위원회가 신용등급 분류 합리화, 원가 분석을 통한 수수료 인하 유도 등 '신용카드 종합대책'을 실시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올 3월과 4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발표에 따른 투신사 환매 사태로 신용카드사의 유동성이 문제가 되자 카드채 만기연장 협조, 증자규모 확대 등 잇따라 대책을 내놓았으나 역시 미봉책에 그쳤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까지 정부 대책은 땜질 수준에 머물렀을 뿐 근본적인 대책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하반기 들어 카드사의 수익 구조 중 2007년까지 현금 대출 비중 50% 이내 규제, 연체율 10% 이상시 적기시정조치 돌입 등 강도높은 대책이 나왔지만 카드사의 부실이 과도해진 상태에서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와 관련,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은행들이 카드 대행사와 제휴, 고객의 신용 상태를 철저히 점검한 후 카드를 발급하고 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하다 연체율이 높아짐으로써 생기는 경영위험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현금 서비스 이용도 그리 쉽지 않다.

카드사의 가맹 은행에서만 현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은행 어느 곳에서든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국내 시스템은 카드사들로 하여금 현금 서비스 수수료 수입에 주로 의존하게 만들었다.

안정된 신용사회에서 지불결제수단으로 통용되던 신용카드가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대출 수단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비씨카드 대구지점 정종옥 차장은 "은행계 카드사들이 소득증명 확인, 신분 확인 등 나름대로의 검증 절차를 거쳐 신용카드를 발급해온 데 비해 전업카드사들은 외형 확대에 치우친 나머지 고객 확대에만 급급하고 대출 수익에 비중을 두는 바람에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의 은행계 카드사들도 방만한 경영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영 부실로 올들어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 합병됐고 외환카드도 외환은행에 합병하기로 결정됐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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