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키우기-시 길라잡이

입력 2003-11-14 14:28:49

어느 교장선생님의 에세이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금강에 살으리랏다〉라는 노래를 배운 날,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그 노랫말의 의미가 궁금해졌답니다.

그런데 한자말 투성이의 가사가 너무 어려웠던지라 혼자 궁리하고 또 궁리한 끝에 〈금강(金剛)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운무(雲霧) 더불고 금강에 살으리랏다.

홍진(紅塵)에 썩은 명리(名利)야 아는 체나 하리오〉를 〈금강(錦江) 가에 살리라. 금강에서 살리라. "음무"하고 우는 소를 먹이면서 금강에서 살리라. 홍역으로 죽은 명리라는 아이야 이것을 어찌 알겠는가?〉로 해석하기에 이르렀답니다.

가사의 뜻조차 모르고 부르는 노래는 신명이 날 수 없지요.

글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뜻(what is said)과 속에 숨은 뜻(what is meant)이 있습니다.

시는 이 양자 사이의 간격이 넓을 뿐 아니라 후자에 생명이 놓이는 글입니다.

그런데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뜻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속뜻에 도달 할 길은 없습니다.

따라서 시 감상 지도의 첫 단계는 바로 시의 겉으로 드러나는 뜻을 바르게 파악하도록 하는 일이지요.

"뭐 이렇게 질긴 고기가 다 있을까/좀체 속내 보이지 않는 것이 의뭉스런 애인 같다/어딘가에 분명 뼈를 감추고 있을 거야/…이 물체는/이제 고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의심은 더욱 식욕을 부풀리고/나는 이것을 기꺼이 먹기로 작정한다/완강하던 페트병에 드디어 금이 가고/텅 빈 속살 들여다본 순간, 나는/속았음을 직감한다…"문채인 시인의 〈공터에서 찾다〉라는 이 시는 〈페트병을 물어뜯는 개의 행위〉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속뜻을 〈삶의 허무〉로 읽던 〈당첨되지 않는 로또 복권 구매 행위〉로 읽던 그건 어차피 독자의 몫이지요

시를 가르칠 때, 시의 속뜻에 대한 해석은 아이들의 자유롭고 주체적인 상상에 맡겨야지 교사가 미리 이를 직접 해설해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흰 꽃 핀 건 흰 감자/파보나 마나 흰 감자"권태응의 〈감자꽃〉이라는 시를 두고 〈이 시는 일제 말기 우리 민족이 창씨 개명을 강요받았을 때,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더라도 우리의 민족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해설을 곁들인다면, 이 시의 맛을 반감시킬 뿐 아니라 아이들의 감상의 폭을 제한하게 되지요. 그간 학교의 시 교육이 실패한 원인은 바로 시의 속뜻을 참고서에 적힌 대로 지루하게 설명하고 외우도록 한 데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문성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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