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데스크-프타호텝의 교훈

입력 2003-11-07 14:24:02

4천년 전 고대 이집트의 현자 프타호텝이 파피루스에 남겼던 잠언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그대, 몸가짐이 올바르기를 원하거든 모든 악에서 벗어나라. 심장이 탐욕에 젖지 않도록 애써 싸우라. 탐욕은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무서운 병이니…. 규칙에 합당하게 따르는 자, 안정된 사람이니 걸어야 할 길에 맞추어 갈 길을 가는구나. 안정된 사람은 고요하게 유서를 쓸 것이나, 탐욕스런 심장을 가진 자에겐 무덤이 없도다'.

요즘 신문을 들춰보면 최근 유행하는 말로 정말 '거시기'하다.

100억, 72억, 11억원 등 불법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럽고, 부동산 전문투기조직, 환치기 조직이 수백억원의 투기자금으로 단기 차익을 올리다 꼬리가 잡혔다는 뉴스가 서민들의 눈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게다가 수출사기, 알박기, 점프통장 등 갖가지 수법을 동원해 더러운 돈을 긁어 모으는 일부 가진 자, 가지려는 자들의 세태는 정당한 노동의 땀에 생활을 걸고 있는 많은 소시민들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다.

---탐욕으로 '거시기'한 요즘

한마디로 탐욕의 깊이가 끝이 없다.

이같은 세태를 최근 시중에서 화제를 모은 영화 '황산벌'에 나오는 거시기 대사로 패러디해 각색해본다면 독자들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에 포복절도할 참이다.

강남 투기녀: "아따 거시기, 한껏 올라부럿소. 야금야금 팔아문께 재미가 억수 좋지라이. 시방 이만한 돈 여의도 아니면 워디서 만져보까이…".

수출사기꾼: "보소보소 참 거시기 허요. 거시기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잉. 여서는 보는 놈이 임자지라. 쓰레기나 빈상자 수출도 그저 고만이고, 수출가 부풀리기는 우습디요. 5천만달러가 어디 간디요. 다 내 수중에 있지라".

이 대화를 읽는 독자들의 속내는 모르긴 몰라도 참 거시기할 것이다.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이기로서니 수십, 수백억원의 돈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에 말문이 막힐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황산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계백이 "니 이름이 뭐시여?"라고 묻자 "나 같은 놈이 이름 냄겨서 멋허것소이, 그냥 거시기라고 알아두쇼"라고 대답한다.

그냥 '거시기'다.

지금 우리 사회처럼 막 돌아가는 세상에 제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랄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자고나면 억장 무너지는 일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민초들은 이를 도저히 정리할 수 없어 그냥 '거시기'로 말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욕의 짙은 그늘 속에도 늘 절제의 미덕이 움츠리고 있는 법. 부산의 향토기업인 송금조 (주)태양 회장이 사재 1천억원을 출연, 교육문화재단을 설립키로 했다는 뉴스가 이번 주 신문지면을 크게 장식했다.

얼마전 송 회장은 부산대에 305억원을 기증한 바 있다.

이에 앞서 미래산업 정문술 전 회장은 자신이 기부해 건립한 대덕연구단지내 연구센터인 '정문술빌딩' 준공식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고 기부했으면 그만이지 준공식 같은데 참석하는 것도 못마땅하다는게 그의 말이다.

최근 문을 연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도서관과는 또 다른 무게로 세인들에게 다가온다.

---사회를 밝히는 조연

희곡이론에 '포일(Foil) 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뜻이다.

즉 주연(主演)도 조연(助演)이 없이는 빛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용어다.

인생에 있어 모두가 자신의 주연이지만 송금조, 정문술씨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를 밝게 하는 조연이면서도 주연이다.

이들의 절제는 미래를 내다보는데 반해 일부 가진 자들의 탐욕은 현실의 올무에 걸려 삶의 무대를 혼탁하게 만든다.

프타호텝은 이렇게 말했다.

"관대한 사람에게 남겨지는 몫이 야박한 사람에게 남겨지는 몫보다 한결 많은 법이다"라고.

2003년 가을, 대한민국. 치유할 수 없는 병, 탐욕의 덫에 걸려 우리는 참 거시기한 세상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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