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도남동 도남농공단지 뒷산. 비포장 산길을 따라 800여m를 오르면 저수지가 나타난다.
'청못'으로 불리는 이 저수지는 1460여년전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저수지 제방에 오르자, 푸른 물결이 바람에 넘실대고 단풍으로 물든 숲에서 낙엽이 우수수 휘날린다.
풍치가 좋아 낚시꾼들도 즐겨찾는 곳이다.
은행나무가 수북이 낙엽을 떨군 한쪽에 붉은 창살로 사방을 둘러친 비각이 있고 그 속에 두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영천 청제비(菁堤碑.보물 517호)와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다.
문화재청의 기록에 따르면 청제비는 신라 법흥왕 23년(서기 536년)에 청못을 처음 축조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화강암 자연판석으로 높이 114㎝, 폭 94㎝, 두께 16㎝이며 한쪽 면은 법흥왕때 청못을 축조한 내력을, 다른 면은 원성왕 14년(서기 798년) 청못을 일부 수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양면비(兩面碑)다.
비문은 신라시대 벼농사 및 수리시설, 공사규모, 당시의 관직명, 인명, 이두문 등을 기록해 신라시대의 사회, 정치사와 언어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학계는 인정하고 있다.
옆에 선 청제중립비는 숙종 14년(서기 1688년)에 세워진 것으로 청제비와 1천년 이상의 간극이 있다.
영천 청제비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지만 보존, 관리상태는 엉망이다.
대한민국 문화재 관리수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개의 비석 곳곳에 새똥이 흘러내려 굳어있다.
탁본이 금지돼 있지만 비석 색깔이 검게 보일 정도로 비석에는 탁본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천년 보물이 새똥을 머리에 이고 풍찬노숙을 하고 있으나 현장에는 관리인조차 없다.
문화재관리당국도 청제비 훼손에 일조를 했다.
주변 보수공사를 하면서 원래 흙이었던 비각 바닥을 시멘트와 석회로 포장하는 바람에 배수가 제대로 되지않고 있다.
영천향토사연구회원 박세호(33.서예가)씨는 "비각 바닥을 포장하면서 비문에 새겨진 글씨 일부가 석회와 시멘트속에 묻혀버렸다"고 지적했다.
또 "비문이 비바람에 마모돼 훼손이 갈수록 심해지는 데다 외진 곳에 있어 체계적 관리가 안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계명대 노중국 교수는 "훼손되기 쉬운 문화재는 박물관으로 옮겨 원형을 보존하고 현장에는 모조품을 전시하는 것도 문화재 보호의 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현장 안내문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청제비 서쪽에 숙종 14년(1688년)에 세워진 청제중립비가 있다…'(영어표기문=There is another stele erected in 1688…) 청제비와 나란히 서 있는 청제중립비가 마치 멀찍한 곳에 세워져있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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