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구 법조계는(3)-법원은 폭풍전야

입력 2003-10-31 14:00:59

"스스로 가든, 떠밀려가든 간에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개혁위원회가 출범한 지난 28일, 대구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이 이제 '변화'라는 태풍의 눈안에 들어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법관들은 사법개혁을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민에 대한 법률서비스 확대라는 장점과 서열파괴, 질서파괴 같은 부작용이 동시에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사법개혁의 파괴력은 어디까지를 사정거리로 둘지 예측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변화에 둔감(?)했던 법원 특성과 판사들의 보수적 성향을 감안할 때 충격의 강도가 꽤 클 것으로 보인다.

대구고법.지법은 지역법관(향토판사)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듯, 타 지역과는 다소 차별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위계질서와 선후배간의 끈끈함은 다른 법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한다. '법관 사관학교'라고 불렸을 정도로 전통있는 명문 법원이라는 자부심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일부 중진 판사들은 개혁론자들이 제기해온 피라미드식 인사구조, 전관예우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냉소적이다.

한 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근속연수 22년차)로 승진하지 못하면 법복을 벗는 관례가 있어야 법관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 또 대구처럼 전관예우를 잘 해주지 않는 곳도 드물다"고 밝혔다.

불황과 경쟁 등으로 인해 변호사업계로 쉽사리 뛰어들기 힘든 고참 판사들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최근들어 대구고법.지법에서는 지법원장을 지냈거나 선거출마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표를 낸 판사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소장 판사들의 경우 사법개혁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소장 판사는 "보직도 필요없고 정년까지 판결문만 쓰면서 살고 싶지만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장윤기 대구고법 수석부장판사는 "개혁과 변화에는 모두가 찬성하지만 법관의 주임무인 재판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방향이 되면 가장 이상적"이라면서 "어쨌든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법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말했다.

▲서비스를 제공할 공간이 없다=법원이 사법개혁 논의와 맞물려 집중심리, 친절운동 등 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대구지법은 범어동 청사의 공간부족으로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그마한 법정에는 피고, 원고, 방청객 등이 뒤섞여 '콩나물 법정'을 연상케 하고 형사사건 피고인 대기실이 부족해 재판일정까지 조정하고 있다.

또 3, 4평 남짓한 사무실에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등 3명이 함께 쓰는가 하면 민사재판에 필요한 조정실 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황영목 대구지법 수석부장판사는 "전국에서 현대적인 청사를 갖지 못한 곳은 대구뿐"이라면서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넓은 청사로 이전하는 게 시급하지만 여건상 여의치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내년말 본관 뒤편에 신청사(지상 5층)가 새로 건립되고, 2010년 서부지원이 개원되면 공간부족 사태가 다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매년 소송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볼 때 머잖아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될 것으로 예측돼 청사 이전이 장기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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