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문열씨 "현대의 광장은 인터넷"

입력 2003-10-25 10:23:40

"단순하게 옳다, 그르다를 판단해서는 곤란합니다. 가치와 기능이 분화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란 신념에 변화가 없으며 가치 판단에 대해 한 줄로 서지 않고 수평으로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인이나 장군을 서로 비교해 계급을 같이 매길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소설가 이문열(55)씨가 24일 오후 경북 상주시 상주대학교 강당에서 '새로운 광장'을 주제로 강연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이란 그의 명성에 걸맞게 이날 강연엔 대학 교수와 학생, 교사,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씨는 인터넷을 새로운 광장(廣場)이라고 규정하고, 그 한계성과 문제점 등을 비판했으며 참석자들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문학관 등에 대해서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씨는 "작가가 가치 판단, 정치적 이슈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다"고 했다. 젊었을 때엔 문학이 나에게 잘 맞아 떨어져서 문학을 했는데 지금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만든 사회에 문학으로 기여하겠다는 공적인 생각을 갖고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피곤하며 자기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에 싫어한다"며 "그러나 작가가 그때 그때에 느낌과 직관을 갖고 그 시대에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논란의 주인공이 됐던 이씨는 처음엔 인터넷을 광장이 아닌 문화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다고 털어놨다. "20세기 문화는 창조보단 패러디의 시대입니다. 패러디와 원본은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패러디는 다시 패러디를 못합니다. 결국 있는 것을 부숴버리거나 없애는 식의 부정, 파괴, 해체만이 가능할 뿐이지요. 패러디의 불행한 종말이란 측면에서 인터넷을 해석했었습니다". 그랬던 이씨는 얼마 뒤 인터넷을 광장의 하나로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인터넷은 그 이전의 광장과는 다른 요소도 있지만 분명히 광장의 하나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이전의 광장과는 달리 상징이 문자 하나로 통일돼 있고, 속도가 매우 빠르고 동원용량이 매우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씨는 인터넷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인터넷 광장이 지닌 취약성과 이를 악용한 측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터넷 광장의 특성 중 쌍방성이 악용되면서 '동의 또는 참여의 착각'을 낳고 있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교환.호환은 없는데도 집단화되고 세력화된 소수 집단의 의견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그 결정에 나도 참여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이 광장이야 말로 소수 집단에 이용되기 쉽다"며 "그런데도 대다수 젊은이들은 이 광장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또한 겉으로 보면 인터넷 광장은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있으나 사실은 깊이 있는 관념, 깊은 사색은 없이 감각적이고 대중적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넷 광장을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 축구, 촛불시위, 친일파 문제 등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힌 이씨는 "(누가) 아무도 거역하지 못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 설득하려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며 "남이 시키는 대로 하고도 내가 동의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동의엔 '진정성'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광장이 포함하고 있는 약점을 악용하면 그 광장은 타락할 수 밖에 없다"며 "인터넷 광장은 비방하고 선동하는 공간이 아닌 상반된 견해를 절충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참여의 광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나누는 이상적인 광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 문학상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씨는 "노벨상이 올림픽 메달처럼 여겨져서는 곤란하다"며 "톨스토이 등 노벨상을 받지 않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고, 노벨상이 문학의 가치를 재는 유일한 척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사진설명. 이문열씨는 "최근 2~3년 동안의 인터넷 광장은 본질에 대해 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향후 이 광장은 서로를 설득하고 화해하는 기능을 발휘하는 정보소통의 광장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최소한의 낙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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