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섬유 이대로 둘 것인가(7)-패션 산업 활성화 방안은 없나

입력 2003-10-24 09:13:48

패션산업 살리기로 유통상권 장악부터 '포스트밀라노'의 '밀라노'는 어디에 있는가.

빛의 속도, 디지털기술로 밀라노를 따라잡겠다고 이름붙여진 밀라노프로젝트. 국비 3천670억원을 지원받은 이 사업의 목표는 파리 패션업계의 원단 제공처이던 밀라노가 20여년의 노력끝에 파리 패션을 능가하는 섬유, 패션산지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직물, 염색의 다운스트림 산지인 대구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를 지닌 업스트림의 패션산지로 '환골탈태'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지역 패션산업은 벼랑 끝에 섰다.

지역 패션산업의 모든 꿈을 담고 있던 패션어패럴밸리 조성은 표류를 계속하고 있고, 중앙정부는 '거 봐라'며 대구 패션산업 육성과 관련한 국비 전액을 삭감했다.

대구 패션산업이 비전을 잃고 헤매는 사이 패션도시화를 내건 서울, 수도권 도시들은 대구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대구 패션산업을 살리려면 국비에만 목매달아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비 지원을 떠나 좀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역 패션산업의 활로를 찾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잃어버린 유통상권을 대구로

대구 패션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유통구조 개선이다

22일 오전 10시 서문시장내 동산상가. 아동복, 여성복, 남성복 등 거의 모든 의류를 취급하는 동산상가에는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 '손님'들로 넘쳤다.

생기가 돌았다.

동산상가에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비법은 바로 '좋은 품질, 싼 가격'이라는 시장원리에 있다.

이곳에서는 백화점 수준의 품질에 일반 패션몰보다 훨씬 싸게 판매, 불황을 돌파할 경쟁력을 지니게 됐다.

동산상가내 입주업체는 약 700개.

김근석 동산상가 번영회 회장은 "총 698개 업체 중 70% 이상이 매주 혹은 매월 서울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 '완제품'을 떼온다"고 말했다.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직접 옷을 만드는 패션, 어패럴업체는 20%정도. 이마저도 절반 이상이 코앞의 서문시장 2지구 원단 대신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원단을 구입한다.

서울에서 '대구'산 원단을 구입, 디자인과 패션성을 가미한 '서울'산 의류를 만들어 대구로 역판매하는 것이다.

이동근 한국패션센터(KFC) 본부장은 이런 어패럴, 패션유통 현실을 보면 왜 지역 패션벤처업체를 집중육성해야하는지 이유가 나온다고 했다.

"패션은 곧 유통입니다.

대구시 패션산업 육성을 통해 섬유업체와 패션어패럴업체를 키우기를 바란다면 특례지원조례를 만들어서라도 대구의 패션벤처기업을 집중 육성해야합니다"고 강조한다.

ㅅ패션 강모 대표는 "질좋은 대구 원단을 현지에서 싸게 구입, 유행을 리더하는 옷을 만들어낼 정도의 감각을 지닌 패션메이커들이 서문시장에 많이 분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서울상인들을 따라잡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서울 동대문이 전국 의류유통의 핵심으로 부각된 근본적 이유는 이곳 상인들이 '패션벤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자체상품기획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김진섭 퀸스로드 대표는 "패션어패럴밸리라는 원대한 계획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선 동대문, 남대문 같은 유통기능부터 키워야 한다"며 "대구패션산업을 키우기 위한 제1차적 과제는 바로 유통시스템, 유통상권을 대구로 되돌리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구 브랜드 런칭"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원단을 대구에서 역 수입해서 쓴다?

같은날 대구 서문시장 2지구 3층 원단 도매상가 밀집지역. 1, 2평 규모의 380개 점포에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양장지, 벨벳 등 각종 원단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하지만 이곳 상인들에 따르면 이 중 90%이상은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가져온 '역수입' 원단들. 원산지는 대구다.

대구 원단을 대구에서 비싸게 수입해서 사다 쓰고 있다.

이상윤 서문시장 2지구번영회 상무는 "벌써 5, 6년전부터 대구에서 생산한 원단들이 서울 동대문 종합시장을 거쳐 다시 대구로 내려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 대구 원단의 서울 '역수입'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을까. 이유는 한가지. 패션은 유통이기 때문이다.

대구 직물업체들은 90%이상이 하청업체로 패션소재 기획능력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획 주문체제에 익숙한 서울권 직물업체들은 값이 싼 대구 직물업체들에게 싼 '하청'만 맡기고 정작 돈이 남는 패션상품 판매는 동대문 원단 시장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패션기획능력이 '유통구조'를 장악함으로써 큰장(서문시장)을 찾아오던 광주, 마산, 진주, 부산 등지의 도매상인들이 동대문 시장으로 이동해 생산은 '대구', 유통은 '서울'이라는 공식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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