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이라크 파병과 생명값

입력 2003-10-23 11:45:22

'1명의 미국인은 2명의 유럽인, 10명의 유고인, 50명의 아랍인, 200명의 아프리카인의 생명과 맞먹는다'.

세계적 베스트 셀러 '노 로고'(No Logo)의 작가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캐니다의 반세계화 여성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이 미국 9.11테러 사태 후 한 연설 중에 나온 말인데, 그의 글과 연설문을 모은 책 '울타리와 창문'(Fences and windows)에 나와 있다.

스웨덴 저널리즘 연합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받은 그는 저명한 언론인들 앞에서 CNN BBC 등 영향력 있는 미디어들이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을 필요이상 반복해 비추는 반면, 전화에 신음하는 아프간의 참상을 외면하는 것은 서구인의 편향된 시각 때문이 아니냐고 항변하면서 국가의 힘(군사력), 경제력, 인종에 따라 생명의 값 체계가 이루어 진다고 했다.

미국인 1명 한국인 5~6명선?

한국사람의 생명 값은 어느 정도일까. 딱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유럽인 수준에는 못 미칠 것이고, 유럽인과 유고인의 중간 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라크 파병 군인들의 월급을 기준으로 주먹구구로 한번 계산을 해보자. 정부에서는 이라크 파병 사병 한 사람에게 월 200만원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미국의 사병이 연 4만달러(4천800만원)쯤 받는다고 하니 미국인 1명과 한국인 2명이 맞먹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 국가의 힘이나 인종적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

국가의 힘은 미국 부시대통령이 방콕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면서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호주 등 5개 국에만 들리고, 한국을 쏙 빼는 것을 봐서는 큰 점수를 못 얻을 것이다.

또 동양인은 인종적인 측면에서 유고인들 보다는 덜 대접받는다고 보면 유럽인과 유고인의 중간지점인 5~6명 선이 되지 않을까? 한국인의 경우는 좀 헷갈리지만 이라크의 경우는 세계인의 생명 값 체계에 딱 들어맞는다.

이라크 경찰이나 공무원이 월 50달러 받으니 미국인 1명에 이라크인 66명이란 계산이 나오고, 동양인보다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점이 평가되면 50명쯤이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후 찬.반 논쟁은 국론분열이 우려 될 정도로 뜨겁다.

찬성론자들은 한.미 동맹의 결속강화와 전후복구사업, 유전개발 참여 등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파병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애시당초 명분없는 침략전쟁을 벌여 뒷감당을 못하는 부시 정권의 설거지를 위해 파병한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과 장래 운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대규모 반대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이 두 극단론 중간에 중도론자들이 있다.

이들은 명분이나 민족의 자존도 중요하지만 국내 주식시장의 40%가 외국자본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전투병 대신 공병이나 의료부대만 추가 파병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그런데도 이라크 파병논란이 극심한 것은 '재신임'제안과 같은 노 대통령의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불투명한 태도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추가파병은 명분이 약하다는 뜻을 비치다가 미국의 집요한 요구가 잇따르고 찬성론자의 우려가 표면화 되면서 국익을 우선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유엔(UN) 결의안이 통과 되자마자 서둘러 파병을 결정, 혼란을 부채질 했다.

이 정부는 아직까지도 파병규모나 현지에서의 역할 등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해 혼선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유엔 결의 하기전 결정 했어야

노 대통령은 차라리 미국의 요구가 무엇이며, 우리의 처지가 어떠한 지를 국민들에게 솔직히 밝히고 국민들의 의사를 종합 적으로 모아, 유엔 결의전 이라크 재건을 위한 비전투병파병을 결정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 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나 정치권의 움직임을 봐서는 전투병을 포함한 대규모 파병이 확실하고, 따라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위험지역에 진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위험지역에 갈 젊은이들에게 이슬람과 힌두교 세계가 전쟁으로 갈등을 빚던 15세기, 그 갈등을 넘어 희망의 시를 읊었던 인도의 시인 카비르를 소개하고 싶다.

'아무도 어머니 뱃속에서 '베다'를 읽지는 않는다/할례를 하고 나서 태어나는 이슬람교도는 없다/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다음에야/각자 다른 옷을 입고서/그 옷에 맞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너와 내가 한 핏줄이고/살고자 하는 욕구도 같았던/그 시절이 그립구나'

사실 이 시는 미국의 부시를 비롯한 호전적 네오콘(Neocon) 딕체니, 럼즈펠드, 울포위츠 같은 사람이 봐야 한다.

최종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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