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정집에서 평범하게 보이는 몇 쌍의 30, 40대 부부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다.
적당히 술잔이 오가자 남편들이 각자의 자동차 키를 아내들 앞에 내놓고 아내들은 맘에 드는 것을 하나 집어들고 그 키의 주인과 카섹스를 벌인다.
새로운 관념과 가치가 대두되면서 혼란을 겪는 미국 중산층 가정을 그린 영화 '아이스 스톰'의 한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며칠 전 각 언론은 경기도의 한 펜션에서 부부 성(性)교환, 이른바 '스와핑(swapping)'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 사진과 스와핑 장소를 제공한 혐의로 인터넷 스와핑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했다는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와핑 사이트 회원이 6천명에 이른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경우 스와핑은 195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해서 1960년대에는 스와핑 파티 광고가 신문에 날 정도였으며, 조사에 의하면 서구인의 2~5%가 스와핑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부 성교환의 형태는 부부가 각자 다른 사람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관계를 가져도 좋다고 합의하는 스와핑과 낯선 사람과 성관계를 즐기되 정서적 관계를 유지해서는 안된다고 합의하는 스윙잉(swinging)으로 구분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칭하여 스와핑으로 부르고 있다.
스와핑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일종의 하위문화 또는 라이프 스타일로 보는 견해에서부터 성도착증으로 몰아붙이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하위문화로 보는 입장은 과거 동성애나 혼외관계 등이 강력한 비난의 대상이었다가 지금은 비교적 거부감이 줄어든 것처럼 스와핑도 하나의 성적 취향으로 인정해야 한다(스와핑족 스스로도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공식명칭을 즐겨 쓴다)는 것인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비정상적 방법으로 성적 쾌감을 추구하는 점에서 스와핑을 새디즘이나 관음증과 같은 성도착증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와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동물행동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래쉬는 남녀가 여러 상대를 원하는 경향은 도덕의 실종과 같은 환경적 산물이 아니라 인간본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스와핑도 본능의 명령에 따른 것이 된다.
그러나 모든 본능론이 그렇듯이 이 가설 역시 '왜 모든 인간이 다 스와핑을 하지는 않나?'라는 물음에는 대답을 못하는 태생적 맹점을 안고 있다.
스와핑은 부부간 합의라는 묘한 정당성을 갖고 있어서 당사자들은 다른 성적 일탈행위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여겨 죄의식 없이 탐닉하게 된다.
그러나 부부 중 한 쪽이 부정을 저지르면 잘못이고 부부가 함께 타락하면 문제되지 않는다는 사고는 도덕적 불감증이 빚은 착각이다.
심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들의 정신상태 및 부부관계는 결코 건전한 것이 아니다.
며칠 전 경찰에 잡힌 한 스와핑족은 삶이 권태로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심리치료가 빅터 프랑클은 권태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데서 오는 무의미감을 뜻하는 '실존적 공허'라고 표현하고, 현대인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다보니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물을 과도하게 추구하거나 마약.섹스에 탐닉함으로써 또는 자살함으로써 실존적 공허를 위장하거나 보상하려고 한다.
새로운 성적 파트너를 맞는 행위, 즉 사회적 금기를 깨는 아슬아슬한 경험은 일시적으로는 욕구불만이나 권태를 해소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권태의 위장에 지나지 않으며 권태를 벗어나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경험이 사회적으로나 개인 내면적으로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상 정서적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이스 스톰'은 외도와 스와핑에 탐닉하던 남자 주인공 벤이 가족과 함께 타고 가던 차안에서 회한의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권태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상실하거나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는 상태지만 삶을 재조명한다는 희망도 함께 담겨있는 과정이다.
즉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해 있던 변화의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과정으로서,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지옥에서 살아남았던 프랑클은 공허를 느끼는 순간 삶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창조적 행위를 통해서 성취감을 느껴본다거나, 진리.자연.문화 또는 대인관계를 통해 사랑을 경험하거나, 공허와 고통 자체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공허에 대한 태도를 바꿔보는 것이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자 권태의 근본적 돌파구임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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