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농업위기 문제를 논하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투적인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매번 외쳐왔던 농업위기론이 양치기 소년의 우화처럼 되기도 했던 것은 다행히도 아직은 우리가 우려했던 절망적인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은 까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추석에 태풍 '매미'의 강타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할 때, 비록 결렬되기는 했으나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농업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는 농산물의 관세와 보조금의 대폭감축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피할 수 없는 농업개방화, 한.칠레 FTA의 국회 비준, 23년만의 쌀 대흉작 등 코앞에 닥친 농업문제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가 지난달 22일 '농업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우리의 농업과 농촌에 있어 심각한 위기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위기보다 더욱 농촌을 암울하게 하는 것은 우리 농업 안팎에 내재해 있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불감증'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FTA 비준 등에 있어 표출되고 있듯이 농업계와 비농업계의 입장과 시각차가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몇해 전인가 서점가의 교양서적 중 '거꾸로 읽는 한국사' 등 책 제목에 '거꾸로'가 들어간 것이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책의 내용은 세월이 흘러 기억나지 않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이나 사물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보는 독특한 접근방식이 무척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위대한 발견, 기발한 발명도 불편한 사항이나 문제점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실타래처럼 꼬여있거나 서로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어 좀처럼 풀기 어려운 농업.농촌 문제도 거꾸로 풀어보는 원리를 도입해보면 어떨까 한다.
그동안 정부는 정부대로, 농민단체는 농민단체 방식으로, 비농업계는 비농업계대로 그들 나름의 방법만 주장하여 상생의 기회나 외교적 협상에 있어 적잖은 타격을 입은 적이 많았다.
농업에 닥친 많은 난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정부는 모든 문제에 앞서 먼저 농정의 당사자인 농업인의 입장에서 농업 회생을 위한 중.장기정책을 개발하고 이해와 설득을 구해야 할 것이며, 농업인과 농업단체는 무작정 농업보호론만을 펼칠 것이 아니라 개방환경하에서 당장 시급한 국민의 깨끗한 먹을거리, 환경.여가공간 보호를 위한 지혜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출.제조업체 등 비농업분야는 무책임한 농업개방 대세론 주장이나 경제 논리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반대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농업부문의 입장을 백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방식이야말로 실타래처럼 얽힌 초미의 농정문제를 한올 한올 풀어갈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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