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고용, 수출에서 대구 경제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섬유산업 활성화의 핵심인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2004~2008년; 포스트밀라노)에 총체적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섬유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개혁 바람은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1999~2003년)에 대한 자기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걸어왔던 밀라노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삼아 포스트밀라노를 반석위에 올리고, 그럼으로써 해방 이후 50년간 대구를 먹여살렸던 섬유산업이 21세기 대구에서 여전히 고부가가치를 낳는 유용한 업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겉만 바뀌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하드웨어 구축 제대로 됐나
밀라노프로젝트 5년의 최대 성과는 지역 섬유.패션 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최소한의 하드웨어를 마련했다는 것. 그러나 1단계는 하드웨어를 운영할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웨어 활용을 소홀하게 여기는 바람에 상당수 하드웨어들을 묵힌게 사실이다.
하드웨어 구축에 가장 많은 예산을 배정 받은 기관은 염색기술연구소(이사장 함정웅)와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사장 이지철). 염색기술연구소는 염색실용화센터(270억원), 니트시제품센터(150억원)를,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신제품개발센터(270억원)와 섬유정보지원센터(125억원)를 구축했다.
포스트밀라노에서도 염색기술연구소 400억원, 섬유개발연구원 250억원의 막대한 국비를 지원받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의 예산이 최종 확정되기 전이어서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포스트밀라노의 성공과 실패는 이들 양 기관의 혁신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양기관이 대구 섬유산업이 세계로 도약할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상당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
밀라노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각종 하드웨어의 옥석을 가려내고 활용 가능한 시설들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연구인력 및 운영비 절대 부족으로 실제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드웨어들은 주관기관간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해 사업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현주소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에서 거금 270억원을 지원받은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은 지난 2000년 11월 신제품개발센터를 준공했다.
이 신제품개발센터는 42종 61대의 첨단 장비를 갖춘 대구.경북 직물의 연구개발 핵심기지이다.
그러나 이 센터는 지난 3년간 연구개발 기능을 상실하고 섬개연의 운영비를 조달하는 단순 생산공장으로 전락해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섬개연은 지난 한 해 이 센터내 사가공 장비를 이용해 지역 섬유업체들에게 복합사를 판매하고 40여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냈다.
문제는 섬개연이 판매하는 복합사가 시중에서 팔리는 제품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 지난 한 해 3억 4천만원어치의 복합사를 구입한 김영상 대웅섬유 사장은 "일반 시장 제품보다 좀 더 싸다는 장점이 있을 뿐 품질 차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이 센터의 사가공기 10종 12대가 섬개연 운영비 마련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지난 3월엔 이 센터에서 생산한 7억5천만원어치의 복합사 납품비를 떼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복합사 주문업체인 모 직물업체가 갑자기 부도를 맞은 것. 섬개연은 해당 업체를 형사고발했고 본부장을 비롯한 4명의 전 직원을 해고했다.
지난해 이 센터에 도입된 준비기 10종 14대, 직.편직기 6종 15대를 이용해 연구개발 또는 시험용 원단을 짠 직물업체는 모두 21개에 불과하다.
이것이 섬개연의 현주소다.
첨단 하드웨어 구축으로 지역 직물업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사전 운영 계획과 사후 평가 체제가 미비해 대부분의 기계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는 연구원이 없다?
왜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운영비 절대 부족이다.
하드웨어를 가동하기 위한 고정비용은 자꾸 늘어나는 반면 지난 2000년을 기점으로 산업자원부 보조금은 2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섬개연 내부 개혁과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했다.
섬개연 직원 74명 중 순수 연구 인력은 단 6명에 불과하다.
섬개연은 밀라노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지난 5년간 단 한명의 신규 연구인력도 채용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섬개연의 대대적 혁신을 요구하는 내부 목소리는 지난 5년간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혁신의 첫 출발은 정부 관여를 최소화해 연구마인드로 무장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련하는 것과 대대적 구조조정을 통한 고급인력 확보다.
현 조상호 원장이 지난달 초 대대적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등 일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원장 임명권을 산자부가 쥐고 있는 한 섬개연의 혁신은 언제 또 다시 위기를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혁신의 과제는 관련 임원들이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섭 과학기술노조 섬개연 지부장은 "신제품개발센터내에 지나치게 많은 사가공 장비(10종 12대)들이 도입된 것도 일부 임원이 사가공 업체 출신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며 "이사장 및 이사회는 장비도입 및 연구개발에 대한 관여를 최소화하고 심의, 의결 기구로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염색기술연구소-공조체제를 마련하라
지역 염색산업의 경쟁력은 전국 최강이다.
싼값에 업체들에게 스팀을 제공하는 열병합 발전소를 중심으로 200여개 업체가 염색공단에 밀집해 있고 그 한가운데 위치한 염기연은 밀라노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각종 하드웨어로 업계 지원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염기연 또한 염색디자인실용화센터(270억원), 니트시제품센터(150억원) 등의 하드웨어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시설 활용과 관련한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 지역 전 섬유업계와의 공조체제 구축이 최대 혁신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염기연이 2001년 준공한 니트시제품센터를 가보자. 염기연은 이곳에 41종 44대의 첨단 장비를 도입했지만 대부분의 기계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서대구공단에 위치한 보광니트 신장철 사장은 대부분의 지역 니트업체들이 바로 코 앞에 니트시제품센터(비산 염색공단)를 놔 두고도 굳이 경기도 반월, 시화 공단을 찾아 염색을 한다고 했다.
니트시제품센터는 전문인력 절대부족으로 폴리레이온 등의 복합사는 물론 기본적인 화이트 염색에도 취약해 한번 이용하고 나면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
실제 니트시제품센터의 전문인력은 단 2명에 불과하다.
이곳 직원들은 "대부분의 기계가 외산으로 전문서적을 통해 가동 방법을 익히고 있다"며 "아직까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장비가 더러 있다"고 고백했다.
트리코트, 라셀 등 경편업체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ㄱ섬유 대표는 세계 니트 시장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고 그 가운데도 경편물이 고부가가치 니트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센터엔 횡편, 환편기밖에 없어 관련 업계 이용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했다.
지역 니트 업체들이 니트시제품센터와 섬개연의 신제품개발센터, 봉제기술센터와의 유기적 협조체제 구축이 절실하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니트시세품센터는 1층 염색, 2층 편직 및 가공, 3층 봉제 시설의 종합 공장 형태를 띠고 있다.
섬유개발연구원도 편직물 연구원 1명과 시험용 환편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대구시가 시비로 구축한 봉제기술지원센터에도 미싱기, 연단기 등 최첨단 봉제 장비들이 가득한 상황이다.
업계는 "니트시제품센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고부가가치 직물인 니트를 활성화하려면 주관기관 및 센터가 공조체제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사진:염색기술연구소 니트 시제품 센터의 모습. 대부분의 첨단 장비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이 절실하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