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게티스버그 아저씨

입력 2003-10-14 09:15:39

2년여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무렵, 우리 가족은 링컨의 연설로 유명한 게티스버그를 다녀오기로 했다.

지도를 들고 시내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는데 50대의 백인 아저씨가 다가오면서 묻는다.

"한국에서 오셨나요?" "예. 저희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아셨지요?"

아저씨 왈, 자신은 몇년 전 경기도 이천에서 1년여 동안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친절하게 대해 준 한국사람들이 고마워서 길을 가다가도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양인만 보이면 혹시 한국인인가 싶어 도와줄 일이 없는가 물어본다는 것이다.

아저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30여분 이상 우리 가족을 안내하면서 남북전쟁 당시 게티스버그에서 남군과 북군이 어디에 주둔했는지, 전투는 어떻게 치러졌는지, 주요 전적지는 어디인지 등을 열심히 설명하고는 손을 흔들며 가던 길로 사라졌다.

한국인들이 친절하게 대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이천의 누가 그토록 그에게 감명을 주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누군가의 친절 덕분에 우리 가족들이 뜻하지 않은 안내와 감사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좁고 자원도 빈약하다.

우리가 살 길은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좇아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력을 키움에 있어 굳이 우리나라 사람, 남의 나라 사람을 따질 필요는 없다.

한국과 한국민들에 호의를 갖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은 이미 우리 국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선진국들이 장학금에 생활비를 주면서까지 다른 나라의 우수 인재를 데려와 교육시키는 것은 그 인재들이 자신들의 국익에 도움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외국학생들 뿐이겠는가. 국내에 잠시라도 머무르는 모든 외국인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 그 자체가 곧 우리 국력을 키우는 길이다.

우리나라를 거쳐간 외국인들이 게티스버그 아저씨처럼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은 어떤 행태로든 자신이 받은 친절을 우리나라, 우리국민들에게 보답하려고 할 것이다.

작게는 길을 잃고 헤맬 때의 길 안내자일 수도 있고, 크게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구원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나라는 강해질 것이 아닌가.

모든 외국인들이 게티스버그 아저씨가 될 수야 없겠지만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게티스버그 아저씨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정부와 온 국민들의 몫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제화사회에서는 너나없이 국민 모두가 외교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춘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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