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안계면 교촌리. 대구에서 5번 국도를 따라 군위를 지나 봉양(도리원)네거리에서 좌회전해 28번 국도로 접어들어 15분쯤 달리면 비안면 소재지가 나온다.
다시 더 5분쯤 달리면 우측 산자락에 교촌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도로변 왼쪽에 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농림부 지정 녹색농촌체험마을인 '무지개수련원'이 있다.
50m 정도 마을로 더 들어가면 교촌리 부녀회가 운영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떡방앗간이 나온다.
떡방앗간에 들어서자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떡방앗간 확장공사가 한창이었다.
부녀회원들은 모래와 시멘트를 혼합하면서 남자들의 일을 거들었다.
부녀회원들은 이어 메주콩 수확을 위해 리어카를 끌고 산으로 나선다.
"뒤에서 얼른 안밀고 뭐하노! 빨리 빨리 밀그라!" 부녀회 권재하(45) 총무는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면서 회원들을 다그친다.
회원 중 최고령자인 김순애(59)씨가 "콩~밭 메는 아낙네야~"를 선창하자 다른 회원들도 콧노래로 화답한다.
콩밭은 금새 노래방이 됐다.
전국에는 마을마다 대개 부녀회가 결성돼 있다.
그러나 교촌리 부녀회는 유별나다.
1987년 결성된 교촌리 부녀회는 30대에서 50대 후반의 주부 17명으로 구성돼 있다.
부녀회는 먼저 일손이 없어 버려지다시피 한 밭 5천여평을 일궈 콩과 깨, 고구마 등을 심었다.
농한기에는 방앗간을 운영해 연간 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수익금은 3개월 단위로 회원들에게 분배한다.
부녀회는 방앗간에서 각종 떡과 참기름, 엑기스 등을 가공해 '무지개수련원' 농촌체험 활동 참가자들과 도시민들에게 싼 값에 공급하고 있다.
특히 마을 공동농장에서 생산한 순수 우리콩으로 메주만들기 체험행사를 개최하면 대도시 주부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도 한다.
부녀회는 또 불우이웃 돕기에도 열성이다.
소년소녀가장의 집을 찾아 김치 등 밑반찬을 제공하고 화장실을 지어주기도 했다.
매년 연말에는 쌀 3가마(240kg)로 떡가래를 만들어 경북도와 의성군을 통해 불우이웃에 전달하고 있다.
어버이 날을 전후해서는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열고 마을 노인들의 농사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교촌리는 단양 우씨 집성촌으로 65가구 173명이 농사를 짓는 농촌마을이다.
마을 이장 우동한(52)씨는 "집성촌이라는 특성도 있지만, 부녀회가 마을 화합을 이끌면서 이웃끼리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부녀회원 김순애(59)씨는 "힘든 농사일과 가사일로 스트레스가 많으나 부녀회 공동작업장에만 나오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며 "부녀회가 모두 친인척으로 구성돼 집안 대소사도 의논한다"고 말했다.
교촌리 주민 57명은 지난해 농림부가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하자 1억8천50만원을 공동출자해 옛 교촌초등학교 터를 매입해 수련원으로 개조했다.
부녀회도 1천만원을 출자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무지개수련원' 개원 소식이 전해지자 여름방학 때는 전국 각지에서 1천여명의 학생들이 몰려왔다.
또 연말까지 700여명이 수련원 이용 예약을 마친 상태다.
교촌마을과 '무지개수련원'에는 지난해 이미 3억2천만원의 국.도.군비가 투자됐고, 올해 11억1천만원, 내년에는 44억5천여만원이 투자된다.
우월영(42) 부녀회장은 "무지개수련원이 개원하면서 식당 일과 전통 먹을거리 체험, 고구마캐기 등 농사일 체험 프로그램에까지 참여해 부녀회 일은 더욱 더 늘어났다"면서 "힘은 들지만 마을에 활력이 넘쳐 좋다"고 했다.
우 회장은 이어 "어린 학생들과 함께 손두부 만들기, 떡메치기, 가마솥 밥짓기, 마꾸라지잡기 등에 나서면 30년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안계고등학교 교장직에서 물러나 무보수로 일하고 있는 우창구 수련원장은 "이 나이에 봉사할 수 있는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스러우냐"면서 "내 고향 교촌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우 원장은 또 "수련원의 발전은 곧 부녀회의 발전"이라고 했다.
송종대 수련원 사무국장도 "부녀회가 생산한 농산물은 건강한 먹을거리"라면서 "도시 소비자들과의 직거래를 통해 마을 소득증대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부녀회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강현구 안계면장은 "교촌리를 '쌀문화 체험마을'로 조성해 쌀시장 개방에 대처하고,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유지해 수동적 여가문화를 능동적 여가문화로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보다는 일년 단위의 내실 있는 체험활동으로 도시민들이 수시로 찾는 농촌마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교촌리에는 11농가가 팜스테이에 참가해 60여명이 동시에 숙식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교촌리에는 부녀회 외에도 65세이상 남자들로 구성된 노인회와 65세 이상 여자들로 구성된 할머니회, 회원 12명의 청년회 등이 있다.
마을의 길흉사에 대비해 상조계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을공동체 유지와 전통장례예식의 보전을 위해 조직된 상여계, 정월대보름 마을 앞 '동신각'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동신계에는 전 주민이 참여하고 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조두진의 인사이드 정치] 열 일 하는 한동훈 대표에게 큰 상(賞)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