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미소와 기쁨이 사라진 '행복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매미'가 할퀴고 간 들녘은 농부의 미소를 앗아가고, 갈등으로 치닫는 정치국면은 국민들에게 기쁨의 씨앗마저 거둬가려는 듯하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이야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정치는 제대로 한다면 바르게 될 수 있는 일 아닌가. 살기가 각박하고 불안하니 짜증이 나다 못해 이 민족의 운수까지 탓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심사이다.
'개혁대통령.안정총리'에, 젊고 참신한 코드 맞는 인물로 짜여진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열 달이 가깝다.
열 달이면, 옥동자 탄생에 버금가는 기간이다.
개혁의 고동소리가 이 근역(槿域)에 힘차게 울려 퍼져 어깨춤이 절로 나올 법도 한 때이나, 사방을 둘러보면 네 편 내 편으로 갈리어 남의 탓 일삼는 싸움판만 눈에 띄니 한숨을 감출 길 없다.
무엇이 침체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혼란스런 사회를 차분히 가다듬으며, 제멋대로 격동하는 시대정신을 수습하고 계통 짓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가. 제도 때문인지, 인물 때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민주주의란 '인물중심'이 되어서는 안되고, '제도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 정권을 제멋대로 농단하던 독재자를 경험했던 우리에게는 자명한 진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가 어떠한 사람이 들어앉아도 탈이 없을 정도로 정상적인 안정상태에 도달한 국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제도수입에만 열중하였지, 그것을 잘 운영하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이 어려운 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의 창성 못지 않게 있는 제도를 잘 운용할 인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지 않는가!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는 인물은 지혜와 덕행이 뛰어나 자연의 이치까지 헤아리는 옛 재상이나, 바람과 비를 불러들이는 신비스런 명장도 아니다.
지극히 성실하고 상식이 통하는 인물이면 족하리라. 작금에 이어진 인사파동, 즉 인품이 작고 쓸모 없다 하여 어떤 자리에서는 쫓겨나고, 어떤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아첨을 충성으로 착각하여 경거망동하다 쫓겨났던 그런 인물들을 우리는 바라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대망하는 인물의 됨됨이를 좀 더 살펴보자.
먼저, 국민의 공복으로서 기꺼이 몸을 바칠 수 있는 청렴결백한 사람을 원한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자들이 정권이 바뀌면 부정부패의 멍에를 쓰고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 높은 자리가 사리 사욕이나 채우고 권력이나 휘둘러대는 악의 소굴이어서는 안된다.
썩은 흙으로 담장을 쌓을 수 없고, 썩은 나무에 인장을 새길 수 없다.
깨끗한 사람만이 깨끗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다음, 현명하고 유능한 사람을 우리는 원한다.
우리 앞에 놓인 주요한 국책사업들이 정처 없이 표류하는 근본 이유도 따지고 보면 명쾌한 분석과 현명한 처방을 내 놓을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도 못 내고 토론의 미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한 개혁의 전진은 없는 것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꿰뚫어 보고, 이 어려운 현실을 잘 요리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닌 인물이 필요하다.
또한, 큰 그릇처럼 내용물을 넉넉히 담을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작은 접시에 큰 도미찜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인품이 모자라면 직원도 통솔할 수 없고, 국민의 요구도 제대로 들어줄 수 없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적군과 우군으로 대하는 편벽하고 고집스런 태도로는 매듭으로 뒤엉킨 갈등을 풀 재간이 없다.
인품의 원만함과 융통성을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끝으로, 굳게 참고 견디는 힘도 지녀야 한다.
높은 위치에서 큰 일을 하다보면 일이 잘 안 풀리고 속상한 일이 어찌 한 둘이겠는가. 낱낱의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꾹 참고 기다리다 보면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된다는 이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감성에 치우쳐 마음이 어지럽다 보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된다.
바른 마음은 바른 길로 나아가는 선행조건이다.
이러한 도덕성과 통찰력, 포용력과 견인력을 지닌 인물들이 개혁에 앞장 서 솔선궁행(率先躬行)할 때 개혁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인물은 드물기도 하고 스스로 감추기도 하지만 그들을 반드시 찾아내고 끝내 활용하는 것이 위정자의 안목이요 역량인 것이다.
제갈량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아간 유현덕의 지혜를 생각하며 큰 인물을 찾아 나설 때이다.
김복규(계명대교수.한국정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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