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나무는 꼭대기부터 마르고…

입력 2003-09-30 11:31:39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대만인 CEO 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최고 경영자인 그와 사석에서 차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가던 끝에 성공적인 기업을 이끌어가는 비결을 그에게 물었다.

그는 첫마디부터 대뜸 "나무는 꼭대기부터 마르고 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더니 거침없이 말을 풀어갔다.

즉, 작건 크건 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진부화하면 조직은 말라죽거나 썩어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기업경영인의 진부화를 조기정년과 연관시키는 연구논문이 나올 정도로 경영인의 진부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늘날 지식과 기술의 진보는 그야말로 눈부실만큼 빠른 속도의 신진대사를 하고 있다.

완고하게 '우리는 이렇게 해왔다'는 것만 고집하다가는 냉혹한 탈락의 벼랑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 문제는 기업경영에서나 대학경영에서나 절실한 당면과제이다.

그렇다면 두뇌가 노후화하지 않는 경영인의 자질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전(vision)'이다.

비전은 미래에 대한 구상능력이다.

맥루한은 '예술가만이 앞을 보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앞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백미러를 보고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맥루한은 구태를 답습하는 보통 사람들과 통찰력을 가진 예술가를 대비시키고 있다.

자질있는 경영자는 마치 미래를 통찰하는 예술가와도 같다.

아무리 시대의 변천 속도가 빠르다해도 이를 흡수하면서, 앞을 내다보는 선견성을 겸비한 참신한 두뇌로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경영이란 비단 회사 경영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경영이라는 개념 속에 크고 작은 회사의 경영, 한 조직의 경영, 인생의 경영, 가족공동체의 경영을 모두 아우른다고 할 때, 비전을 바탕으로 경영을 장기적인 성공을 이끌어 갈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경영자의 그릇의 크기이다.

무릇 한 단위의 조직은 그것을 이끌어가는 자의 그릇 이상으로 커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상히 가야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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