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레시브(진보적) 록의 전설로 불리는 록 그룹 킹 크림슨의 1969년 데뷔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에 수록된 '묘비명(Epitaph)'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몽환적이면서도 허무함이 짙게 밴 사운드는 황량한 무덤가에 홀로 서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인간의 대명제인 '죽음'을 고요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원로 소설가 한말숙(72)씨가 한 문학잡지에 실은 '가상유언장'이 세간의 화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스스로 정한 묘비명. '평생 감사하며 살다가 한 점 미련없이 생을 마치다'. 참으로 담박(淡泊)하고도 녹차의 뒷맛처럼 여운이 남는 묘비명이다.
죽은 이의 일생을 몇 자의 글귀로 짧게 담은 묘비명은 산 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망자에 대한 엄숙주의가 지배적인 우리네 묘비명은 대체로 형식적이고 근엄한데 비해 서양에선 묘비명이라 하기엔 너무나 기발하거나 심지어 익살스러운 것들도 많아 죽음에 대한 동서양의 의식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은 정말 별스럽다.
'보라. 여기 디오판토스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생의 6분의 1은 청년이었다.
12분의 1이 지나자 수염이 자랐고, 다시 7분의 1이 지나자 결혼을 했다.
5년 후 낳은 아들은 아버지 나이의 꼭 반을 살았고, 아들이 죽은지 4년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 구해보자'. 수학자답게 그는 땅 속에서도 여전히 문제를 내고 있다(그 결과 84세로 계산됐다).
미국의 철강왕이자 자선사업가였던 앤드루 카네기의 비석엔 '여기에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누워있다'고 새겨져 있어 인재를 중시했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상 수상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익살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되었다'.
애틋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묘비명들도 적지않다.
미국 뉴잉글랜드 한 공동묘지의 낡은 비석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한다.
'폴, 레이첼, 에이모스 존, 그리고 꼬마 리처드가 여기 함께 잠들다.
이들은 벽난로에 불 붙이는 법을 잘 몰랐던 누이 엘리자베스의 실화(失火)로 모두 이렇게 요절했다'. 또 다른 무덤의 비석 '두 남편을 먼저 보낸 한 아내가 여기 행복하게 잠들어 있다.
오른쪽엔 로버트, 왼쪽엔 리처드와 함께'.
요즘은 우리네 묘비명에서도 망자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가슴절절하게 담은 글을 더러 볼 수 있다.
문득 삶이 무료해지는 날, 공동묘지의 묘비명 읽기를 해본다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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