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선비가 살았는데 몹시 가난했어. 아무리 선비라도 가난하니까 글만 읽고 살 수가 있어야지. 농사도 짓고 나무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았지. 그러다가 한 해는 흉년이 들어서 식구들이 모두 쫄쫄 굶는 바람에, 하릴없이 집에서 기르던 소를 장에 몰고 가서 팔았어.
소를 팔아서 돈을 받아 가지고 이제 집에 가는 참이야. 아무려나 소 판 돈이니 제법 많을 것 아니야? 행여 잃을세라 행여 빠뜨릴세라 조심조심하며 갔지. 장터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재가 하나 있는데, 그 재를 막 넘으려니까 도적이 나타나서 길을 턱 막네.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돈 절반을 내놓아라".
어쩔 수 있나. 그나마 몽땅 빼앗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고 돈 절반을 떼어 도적한테 줬어. 그러고 나서 물어 봤지.
"네가 사는 곳은 어디며, 성과 이름은 무엇이냐?"
"내가 사는 곳은 '이 산 저 산'이고, 내 성은 '길가다 나머지'고 이름은 '소여물 먹다 나머지'다".
도적이 이 말을 남기고는 바람같이 가버리네.
선비가 남은 돈으로 어찌어찌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려 놓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알다가도 모르겠거든. 도적이 제 입으로 사는 곳이며 성 이름을 말했지마는 도무지 알쏭달쏭해. '이 산 저 산'은 무엇이며 '길가다 나머지'는 뭐고 '소여물 먹다 나머지'는 또 뭐냐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서 고을 원님한테 가서 물어 봤지마는 원님도 그 수수께끼를 못 풀어. 하릴없이 추적추적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가에서 아이들 몇이 원님 놀이를 하고 있더래. 한 아이가 원님 노릇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이방이다 사령이다 하면서 놀고 있더란 말이지. 그래서 장난삼아 물어 봤어.
"원님께 아룁니다.
'이 산 저 산'에 살고 성은 '길가다 나머지'요, 이름은 '소여물 먹다 나머지'인 도적을 찾아 주십시오".
원님 노릇하던 아이가 그 말을 듣더니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술술 풀이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거야.
"그건 어려울 것이 없느니라. '이 산 저 산'은 양쪽에 산이 있으니 '양산'이고, 길가다 남는 것은 신이요, 소여물 먹다 남는 것은 구유이니, 양산골에 가서 '신구유'라는 사람을 찾으면 될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그럴 듯하거든. 선비가 그 길로 당장 양산골을 찾아갔어. 양산골에 가서,
"이 동네에 '신구유'라는 사람이 사느냐?"하고 물으니까 사람들이 금방 가르쳐 주는데, 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조그마한 오막살이를 가르쳐 주더래. 당장 그 집으로 갔지. 삽짝 앞에서 다짜고짜,
"신구유 있느냐? 어서 나와 내 돈을 내놓아라"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데, 틀림없는 그 때 그 도적이더래. 도적이 선비를 보더니 그만 낯이 새파랗게 질려 가지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
"하도 먹고 살기 어려워 그 때는 못할 짓을 했습니다.
사는 곳과 성 이름을 수수께끼로 남겼는데, 이리도 용하게 알고 찾아오시니 더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마당에 묻어 두었으니 어서 파내어 가십시오".
마당을 파 보았더니 돈이 그대로 있더래. 그래서 돈을 도로 찾아 왔는데, 그 뒤로 선비는 일이 다 잘 풀려서 걱정 없이 잘 살았더란다.
도적은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돼서 이 선비를 잘 따르며 살았다지.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그건 나도 몰라. 아무도 몰라.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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