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파병에 대한 잘못된 발상들

입력 2003-09-23 11:11:39

이라크 전투병 파병 문제를 놓고 우리사회가 들끓고 있다.

언론은 말할 것 없고 찬반 입장을 표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사회집단들이 많다.

반대하는 쪽은 명분이 없다고 하고, 찬성하는 쪽은 실리를 현실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격차를 메우기가 여간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너무나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의 "옳고 그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결정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시간을 두고 국민 여론을 지켜보고, 또한 이라크 현지 사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시찰단을 파견한다고 한다.

적절한 대응이라고 본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파병 논란에는 몇 가지 잘못된 발상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논란의 가닥이 바로 잡혀야 좋은 결과가 있지, 그 가닥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면 필시 소모적 논쟁으로 그칠 소지가 많은 것이다.

첫째, 미국의 파병 요청을 북핵해법과 연결시키는 발상이다.

북핵문제가 생겨난 이후 정부는 나름대로 외교적 노력을 다한 결과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대화 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8월말에 베이징에서 제1차 회담이 열렸다.

11월 즈음에 제2차 회담이 열릴 전망이다.

미국이 이 회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북핵해법은 6자회담이며, 인내를 갖고 회담을 추진시켜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파병 요청을 북핵해법과 연결지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사태를 호도하는 발상이다.

둘째, 파병 요청을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와 연결시키는 발상이다.

파병을 거절하면 미군을 신속히 빼 갈 것이라는 둥, 그것을 이라크로 돌릴 것이라는 둥 하는 발상이다.

이 역시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발상이며, 괜히 화를 자초하는 생각이다.

미군 재배치 문제는 독립된 사안으로서 이미 한미 당국간에 재배치에 관한 합의가 있고, 구체적 일정도 있다.

미국의 동북아 지역에 대한 전략과 한국의 안보상황을 고려하여 주한 미군 재배치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미국이 좋아할 일이다.

셋째, 정치인들의 한심한 태도다.

국회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내면 그것에 대해 이런저런 대응을 하겠다는 준비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특위도 만들었다.

국민의 인식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대의 기구인 국회가 국민의 여론을 들어보고 찬반 양론을 갖고 격론도 벌인 결과 국민의 인식은 이렇더라 하고 견해를 제시해야 마땅한 데 그와는 정반대로 대통령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대응하겠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발상이자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국익과 관련하여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가 따로 없이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아야 할 텐데 싸움이나 걸 준비를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비난을 들을 만하다.

넷째, 베트남전쟁과 비교하는 발상이다.

이 사안과 관련하여 베트남전쟁 얘기가 나오게 된 발단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 '이거 제2의 베트남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데 있다.

파병에 찬성하는 입장에 대한 근거로 이라크와 베트남전쟁은 다르다는 점을 거론하는 그 자체가 아무런 맥락도 맞지 않는 난센스다.

마지막으로, 파병의 결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는 점 역시 파병론의 약점이다.

지금 한국의 인구학적 특성상 군인은 아들이 하나거나 아예 외동인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가서 죽고 중상을 입었을 때의 국민 여론을 상상이라도 해보았는가. 미군이 소중하면 우리 군인도 그만큼 소중하다.

평균 자녀가 오륙 명이었던 베트남전쟁 때와 지금은 판이하게 다르며, 군인 한 명의 가치가 예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잘못된 발상들을 갖고 파병 논의를 하면 필시 그 결과가 호도되고 대통령이나 정부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파병 논의 구도에서 이상의 잘못된 발상들을 제거해야 하며, 빠진 요소는 고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수훈(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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